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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07. 2023

작은 땀, 큰 땀, 그리고 꽃잎

아무도 몰라준다고 할지라도

"투둑... 투둑..."


요즘 같은 한 여름이면 굳이 뛰지 않고 잠시만 야외에 나가 걸어도 금세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이번 여름엔 볼록 튀어나온 올챙이 배를 집어넣겠다는 다짐을 한지도 벌써 칠팔 년쯤 된 것 같다. 임산부도 아니면서 결혼을 하고 조금씩 배가 불러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에 존귀한 생명 대신 게으름을 잉태한 탓이라 생각하며 한 해라도 빨리 내장 지방을 덜어내고 싶다는 생각은 부풀어 오르는 똥배의 부피에 비례해 커져간다.  


그런 생각으로 아주 가~끔 조깅을 하는데 나가기 전엔 그렇게 귀찮 것 없지만 막상 조금 뛰고 오면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그렇게 산뜻할 수 없다. 귀찮음을 이겨냈다는 대견함, 아침 밥맛이 좋아지는 기쁨, 위와 장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는 것 같은 뿌듯함처럼 홀가분한 감정들이 가쁘게 들이마시는 들숨과 함께 온 가슴을 빡빡하게 채운다.


숨을 헐떡이며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어지러운 머리를 잠시 진정시키기 위해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창을 넘어 보이는 공원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뿌듯함을 위해 동그란 땅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운동을 하고 있을 때는 땀이 흐르는 것을 그리 크게 인식하지 못한다. 한창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흘러내리는 땀보다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 벌떡대는 심장과 큰일이라도 치르고 있는 듯 헐떡이는 호흡에 인식의 대부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운동을 끝내고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는 가라앉는 심박수와 호흡보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눈길이 간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떨군 상태는 자연스레 시선이 아래로 향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한 방울의 땀이 뚝하고 떨어지는 순간 의식은 잠시 떨어지는 땀을 향해 쏜살같이 수렴한다. '툭... 툭...'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이마와 턱, 팔꿈치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그란 땀방울은 바닥에 닿으며 꽃잎을 피워낸다. 바닥에 떨어져 동그랗게 톡 하고 터져버린 땀방울은 생김새가 꼭 꽃잎을 닮아있다. 그리고 시선은 곧장 그 땀이 흘러내린 곳으로 향한다. 이마와 턱은 볼 수가 없으니 가장 가까이 보이는 손등과 팔등을 훑기 시작한다. 피부의 모든 땀샘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눈에 보이는 모든 피부의 겉면이 창을 넘어 스미는 아침 햇살에 비춰 반짝이고 있다. 손등과 팔등에서 반짝이는 땀은 마치 고급 시계에 촘촘히 박혀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연상케 한다.


작고 촘촘하게 맺혀있던 땀조각들은 슥슥 닦아냄과 동시에 한데 뭉쳐 땀방울이 된다. 그리고 그 땀방울은 하강하여 땅바닥에 땀의 꽃잎을 피워낸다.


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조각을 만든다. 작은 조각 큰 조각, 완성시킨 조각 미완의 조각, 부서진 조각 부숴버린 조각... 조각을 만들던 모든 순간에는 그 조각을 위해 애썼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때로는 크게 애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자기 인생에 박혀있는 조각의 크기와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일 테다. 우리가 남의 인생을 바라보듯 나의 인생 또한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모두 작은 파편에 불과해 보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조각의 크기가 크건 작건, 이뤄냈건 실패했건, 결국 그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어떤 형태든 결국 꽃을 피워낼 것이라는 데 있다. 작게 새어 나온 땀부스러기가 모여 땀방울이 되고 땀방울이 모여 땅에 떨어지듯 우리 인생의 조각들도 모이고 모여 결국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표출될 것을 믿자. 뜨거운 태양아래 땅에 떨어진 땀방울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지라도 떨어진 땀방울을 바라보던 찰나의 순간에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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