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들의 이야기

by 정 호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은 미세하고 무수한 외부, 내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는다. 영화 "우리들"은 어린 시절 우리가 한 번쯤 겪어온, 또는 주변에서 언젠가 분명히 목격한 적 있는 그야말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방학 중 우연히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던 동네 토박이 '선'에게 방학과 함께 전학 온 '지아'는 방학보다 더 반가운 선물이 되어주었다. 갓 태어난 짐승이 처음 마주한 대상을 부모로 각인하듯 전학 온 지아는 선에게 각인되었고 외톨이었던 선 역시 지아에게 각인되었다. 둘은 그렇게 우연히 친해졌다. 지아는 가정 형편상 일주일간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선은 지아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엄마를 설득해 지아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일주일간 둘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고, 물놀이를 하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선에게도 한여름의 햇살만큼 빛나는 시간이 선물처럼 내려앉는 듯 보였다. 지아 역시 선이 가지고 싶어 하는 색연필을 문구점에서 훔치는 일까지 벌이며 서로의 마음에 가 닿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것이 나중에 자신에게 큰 상처로 되돌아올 줄은 모른 채... 지아가 전학 와서 처음 만난 친구가 선이 아니었다면 그 둘의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연은 이처럼 행운과 비극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것이 랜덤박스인 탓에 어떤 이는 우연을 기다리고 또 어떤 이는 우연을 바라지 않는다.


선의는 선의로 전달되어야 선의로서 가치롭다. 그래서 선의를 선의로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떠나게 한다. 선과 지아도 그렇다. 오이김밥을 좋아하는 지아를 위해 선은 엄마에게 아침부터 오이김밥을 싸달라며 투정을 부린다. 부모님이 이혼하여 아버지와 살고 있는 지아에게 엄마의 품에 안겨 투정 부리는 선의 모습은 그것이 비록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한들 결코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지아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이혼은 했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던 지아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선에게 대수롭지 않게 학원비를 대주겠다며 자신과 같은 학원에 다니자고 제안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지고 싶은 학용품 하나 사는 것도 주저하는 선에게 지아의 배려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기 충분했으리라. 그렇게 친구를 위한 마음으로 건넨 선의 오이 김밥과 지아의 학원비는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가장 가까웠던 두 친구 사이에 최초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 일을 계기로 며칠 동안 서로 연락을 안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언제 서먹했냐는 듯 금세 화해를 한다. 잃어버린 선의 동생을 함께 찾는 미션을 수행하며 둘의 관계는 회복되는 듯 보이나 멀리서 다가오는 지아의 학원 친구를 바라보며 선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할머니가 등록한 학원에 다니며 지아에게는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방학이라는 공백의 시간은 그렇게 선과 지아를 물리적으로 갈라놓았고 그 틈새에 새로운 우연을 박아 넣는다. 학원을 다니며 보라와 가까워진 지아는 선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교실의 파워 게임에 익숙한 지아는 외톨이인 선보다 무리 지어 다니는 보라의 패거리에 편입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아의 바람은 또 다른 우연에 의해 붕괴된다. 새로운 무리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지아는 무리의 리더인 보라의 눈밖에 나기 시작한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보라는 지아에게 성적으로 밀린 뒤 열패감에 휩싸인다. 분에 못 이겨 학원에서 혼자 울고 있던 보라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선은 잘못된 동정을 베푼다. 동정의 결과는 참혹했다. 지아에게 열등감을 품게 된 보라는 손쉽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보라는 자신을 달래준 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매니큐어를 빌려준다. 그리고는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며 지아와의 비밀을 캐묻는다. 지아에 대한 배신감, 보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선은 지아와 자신 사이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선과 지아 둘은 그렇게 친구에서 원수가 된다. 서로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며 오래도록 남을 생채기를 낸다. 공격하면 반격하고 반격하면 또 공격하는, 둘의 애정과 질투, 배신감과 복수심은 복잡하게 뒤엉킨 채 끝이 없을 것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다.


선: 윤아 너 왜 계속 연우랑 놀아 응? 아니~ 연우가 너 계속 다치게 하잖아 맨날 상처 내고 때리고 장난도 너무 심하고
윤: 이번엔 나도 같이 때렸는데?
선: 그래?
윤: 응 연우가 나 때려서 나도 쫓아가서 연우를 확 때렸어
선: 그래서?
윤: 연우가 여기를 또 팍 때렸어
선: 그래서?
윤: 같이 놀았어
선: 놀았다고?
윤: 어 보물찾기 하러 나갔는데?
선: 야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윤: 그럼 어떡해?
선: 다시 때렸어야지
윤: 또?
선: 그럼~ 걔가 때렸다며 너도 다시 때렸어야지
윤: 그럼 언제 놀아? 나 연우랑 놀고 싶은데
선: 어...?


선에게는 어린 동생이 하나 있다. 친구에게 매일 얻어터지면서도 같이 노는 동생이 마음에 걸렸는지 선은 동생 윤에게 너를 아프게 하는 친구와는 놀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윤은 그럼 언제 노느냐며 되려 선에게 묻는다. 할 말을 잃은 선은 잠시 대화를 멈춘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 잘 보이고 싶었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미숙한 마음은 서로의 진심을 오해하고, 미세한 잘못을 확대하고, 삼자의 농간에 놀아나며 서로를 밀어내게 한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여전히 자존심을 내세우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할 때 먼저 손 내밀지 못할 때가 많다. 화해하고 싶은 마음, 다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쭈뼛하고 뻣뻣한 태도 뒤에 숨어 영영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고 만다.


화해를 위한 것인지 새로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인지 영화를 통해 알 수는 없지만 지아를 바라보며 입술을 들썩이는 선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마도 화해를 위한 몸짓이었으리라. 그것은 분명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에게 건네는 감독의 선물이자 위로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