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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04. 2023

그게 전부야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아들: 아빠 이거 저장해 줘

아빠: 이거 왜 저장하고 싶어? 그냥 새로 다시 그리면 되잖아

아들: 아니야 소중한 거니까 저장하고 싶어

아빠: 그래 알았어. 그럼 저장해 줄게

아들: 그런데 삭제를 누르면 다 사라져?

아빠: 그렇지 다 사라지지 삭제는 갑자기 왜?

아들: 게임에서 삭제를 누르면 저장한 게 지워져서 물어봤어

아빠: 그렇구나. 아들은 기억이 다 삭제되면 어떨 거 같아?

아들: 안 돼. 슬플 것 같아

아빠: 아들한테 소중한 기억이 뭐야?

아들: 엄마랑 아빠랑 재미있게 논 거, 그게 전부야.


스마트 펜을 이용해 스마트폰에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자신이 그려낸 그림이 소중했던 모양인지 저장을 요구한다. 어른의 눈에는 별 볼 일 없는 낙서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완성해 낸 예술작품으로 마음에 담아둔 모양이다. 똑같아 보이는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저장해 달라는 아이의 요구가 귀찮아 왜 저장해 달라는 것인지 물었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저장하고 싶다는 당연한 말을 굳이 아이의 입을 통해 확인해야만 알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귀찮음과 무딘 감수성이 빚어낸 촌극이리라.


소중한 것이니 저장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마음이다. 소중히 여겨 저장해 둔 것이 삭제되면 슬플 것 같다는 예상 또한 당연한 예측이다. 문득 아이의 마음에 소중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마리오 장난감일까, 틀린 그림 찾기와 미로 찾기 공책일까, 아침저녁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가지고 논 보드게임일까, 마리오를 보러 다녀온 유니버셜 스튜디오 여행일까. 궁금한 마음에 너에게 소중한 기억이 무엇이냐며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아빠랑 재미있게 논 것이라는 말에 가슴이 부풀고, 그게 전부라는 메아리는 머릿속을 울린다. 이렇게 예쁜 말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는데 예상치 못한 말로 덜컥 부모에게 감동을 주는 아이를 보며 신앙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물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의 세계는 아이의 세계가 되고, 아이의 세계는 나의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과 자원이 아이를 향해 있고 그렇게 성장하고 확장되는 아이의 세계를 바라보며 나의 세계 역시 재정립된다. 나는 하나의 세계고 이 세계는 다시금 내가 된다. 세계가 진보를 목적으로 운동한다면 개인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고자 하는 목적성을 띈 움직임을 위해 에너지를 쏟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와 자기 세계의 진보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아이의 세상에 감동과 환희가 가득 찰 때 아이의 그릇은 조금씩 커진다. 그렇게 인식의 틀을 넓히고 감정의 깊이를 더해가며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 역시 성장한다. 아니 성장해야만 한다. 성장하지 않고서는 어느 순간 아이를 담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와 부모의 성장은 환류되며 무한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아이로 가득 채울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부모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한 어린 시절의 일정 기간 동안만큼은 부모로서 총력을 다해야 한다. 부모라는 존재로서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게 전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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