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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29. 2023

아이들이 너무 가고 싶어 해서 간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풍

아들: 아빠 그런데 오늘도 비 온대

아빠: 그럼 소풍은 어떻게 한대?

아들: 오늘은 비 와도 간대

아빠: 정말? 비 오는데 고구마를 어떻게 캐지?

아들: 몰라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가고 싶어 해서 간대


지난 수요일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현장체험학습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탓에 현장체험학습은 취소되었다. 소풍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다섯 살 아이들의 마음에는 커다란 아쉬움이 밀려왔으리라.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살뜰히 살펴 이번 수요일엔 무슨 일이 있어도 소풍을 가겠노라고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나 보다. 그렇게 기다리던 수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런데 창밖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핸드폰을 열어 강 확률을 살펴보니 40%, 40%는 애매한 수치다. 비가 올지 안 올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40%의 수치 앞에서 혹여나 오늘 또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되면 어쩌나, 그렇다고 현장체험학습을 갔다가 비가 오면 어쩌나 싶어 그야말로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걱정을 잔뜩 끌어안고 아이를 바라봤다. 날씨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에 앉아 블록 쌓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빠의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모양인지 아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을 꺼낸다.


"아빠 그런데 오늘도 비 온대", 아뿔싸, 오늘 비가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먹구름을 보고 알았을까, 엄마가 일기 예보를 보고 날씨를 알려준 것일까. 창문 밖의 어둑하게 낀 먹구름이 아이의 마음속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은 아닌가 싶어 서둘러 아이에게 묻는다. "그럼 소풍은 어떻게 한대?", "오늘은 비 와도 간대, 아이들이 너무 가고 싶어 해서 간대" 마치 자신은 그 "아이들"에 속하지 않는다는 듯 덤덤하게 뱉는 말이 재미있다. 만약 소풍을 못 가게 되면 슬퍼서 울 거냐고 묻자 자신도 친구들도 그런 것으로는 이제 울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와 마주 앉아 아침부터 깔깔대며 웃는다.


그나저나 궁금하다. 오늘은 고구마를 캐온다고 했는데 고구마는 잘 캤는지, 캔 고구마를 어디에 담아 오는지, 고구마를 캐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진 않았는지, 어떤 도구를 이용해서 캤을지.


아이를 낳기가 두려웠던 이유는 내가 과연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걸 보니 아이를 사랑하기는 사랑하는 모양이다. 온 마음과 정성을 남 없이 쏟아부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미스코리아 이하늬는 자신이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쌓아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보다 완벽에 가까운 일을 수행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참 많이 공감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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