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호 Dec 02. 2023

블록도 마음이 있대?

그런가 봐

아들: 아빠 이것 좀 도와줘 블록이 안 끼워져

아빠: 그럴 땐 다른 걸로 바꿔서 끼워봐. 그럼 잘 끼워질 수도 있어

아들: 어? 그러네 바꾸니까 한 번에 끼워지네

아빠: 그렇지? 잘 맞는 블록이 있고 안 맞는 블록이 있어

아들: 같이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은 것처럼 블록도 마음이 있대?


디폼블록이라는 아주 작은 블록으로 이것저것 만드는데 취미가 붙은 요즘, 아이는 도안을 보고 집중하며 블록조각을 끼운다. 혼자서 블록조각을 조립하다가 가끔 아귀가 맞지 않아 끼워지지 않는 블록을 가져와 끼워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다른 조각으로 바꿔 끼워보면 빡빡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야 제 짝을 만났다는 듯 부드럽게 스르륵 끼워다. 그렇게 몇 번 조각을 맞춰주다가 혼자서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에 잘 맞는 블록이 있고 안 맞는 블록이 있으니 다른 조각으로 바꿔서 끼워보라는 말에 아이는 친구관계를 떠올린 모양이다.


자리에 같이 앉고 싶지 않은 것처럼 블록도 마음이 있어 서로 함께하기 싫어하는 것이냐는 아이의 질문에 무어라 답을 해야 좋을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누군가가 좋아지는 것도 싫어지는 것도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일진대 자리에 같이 앉고 싶지 않은 아이와도 함께 앉아야 한다며 선량함에 대해 말해주어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와는 함께 앉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개인의 욕구충족을 우선시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안내해야 할까. 전자는 배려와 선량함을 익힐 수 있겠으나 불만이 쌓일지도 모를 일이고 후자는 죄책감 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 아이의 질문에 부모가 어떤 대답을 해주느냐에 따라 아이는 새롭게 뚫린 시냅스가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듯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갈 테다. 양면을 들여다보기보다 정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아직 어린 다섯 살 아이에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대답으로 늘 조심스러운 생각과 마음을 전하지만 어디까지 받아들여질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아이와 함께 앉고 싶었던 것인지 어떤 아이와 함께 앉기 싫었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묻고 싶기도 하였으나 블록 조립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냥 "그런가 봐"라고 답하고 말았다. 내가 내려주지 못하고 망설인 답을 스스로 찾아가길 바라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포비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