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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Nov 14. 2023

포비아

외면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 공포감, 좌절감, 혼란스러움, 회피, 불안, 분노, 우울, 걱정, 질투, 의기소침, 난처함, 외로운, 무기력함, 놀람, 절망스러움, 약 오름, 당황, 괴로움, 막막함, 억울함...


부정적 감정은 다양하다. 이토록 다양한 온갖 부정적 감정은 미세하게 그 결이 다르지만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공통적인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불편하고 싫다"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을 "좋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부정적 감정은 왜 불편하고 싫은 것인가.


첫 번째 이유는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것을 처음 마주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모든 최초의 경험 앞에서 우리가 경직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가보는 나라, 처음 마주하는 놀이기구, 처음 들어보는 공포영화의 효과음, 모든 종류의 입학식과 대면식, 첫 연애와 첫 키스. 생경하고 낯선 것들은 그렇게 우리 몸과 마음을 경계태세로 전환시킨다. 이런 종류의 불편함은 경험이 쌓이고 익숙해지면서 점차 해소된다. 그렇게 우리는 낯설고 불편했던 것들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경험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부정적 경험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항상 같은 이유로 연애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해당 이유에 대해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가 항상 바람을 피워 연인 관계가 끝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바람피우는 이성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을 느끼고 연인의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간섭한다. 남자친구의 게으른 모습에 실망해 같은 이유로 몇 번의 연애를 끝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이처럼 부정적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필연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게 된다.


세 번째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다. 뾰족한 물건을 보기만 하면 그것에 찔려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자꾸 뾰족한 물건에 찔리는 장면이 상상된다던지,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으면서 비행기를 타면 추락하거나 테러범에게 납치되어 죽게 되는 장면이 떠올라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력이 빚어내는 고통의 산물이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다양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위험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상황임에도 그것을 두려워해 피하는 증상, 그것을 우리는 포비아(공포증)로 정의하며 공포감을 느끼는 대상을 앞에 붙여 사용한다.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광장공포증, 어둠공포증, 대중공포증, 무대공포증, 동물공포증, 풍선공포증, 환공포증, 비둘기공포증, 송곳공포증, 건강공포증, 이런 온갖 종류의 공포증은 실제로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협한다기보다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잘못 꿰어진 허상의 이미지 때문에 우리를 두렵게 만들곤 한다.


우리는 각종 포비아에 둘러싸여 있다. 편식도 어찌 보면 공포증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오이나 가지, 당근을 못 먹는 아이는 앞서 말한 3가지 이유 중 어느 것 때문에 음식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것이리라. 많이 먹어보지 않아 익숙지 않거나, 먹었는데 구토를 했거나 목에 걸려 음식이 안 넘어가 질식할뻔했던 경험이 있거나, 그냥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떤 이미지 때문에 아이들은 어떤 음식을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굳이 억지로 먹기 싫다는 음식을 먹일 필요는 없겠으나 일상 영역에서 꽤나 자주 마주하는 어떤 것에 대해 과도한 거부감을 느낀다면 가능한 그것을 극복해 내는 것이 좋다.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도, 극복할 필요도 없으나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잦은 패배감을 발생시키고 결국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편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식사 시간은 고역이다.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면 어쩌나 늘 메뉴를 생각하며 전전긍긍할 테고 어른들 앞에서 음식 가리는 아이라는 잔소리를 듣기 싫은 마음과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기분은 점차 아이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킨다. 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매일 반복되며 오랜 시간 아이의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한 인간의 성격 형성에 분명 영향을 끼친다. 편식을 하는 아이라고 반드시 자존감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편식하는 아이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불필요한 눈치와 잔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 때때로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부모와의 분리 불안보다 무서운 것이 스마트폰과의 분리 불안이다.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살아보자는 말에 아이들은 그것이 무척이나 대단한 도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질색팔색을 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포노사피엔스라는 용어가 등장한 현시점에 어찌 보면 폰 없는 생활이 두려운 것은 자연스러워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분명 극복할 수 있는 두려움이다. 이처럼 일상 영역에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무서워하느라 우리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불필요한 좌절감을 경험하며 건강하지 못하고 무언가 잘못된 삶의 토대를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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