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호 Nov 03. 2023

오마주, 패러디, 짝퉁

그들의 차이점과 공통점

한평생 시계에는 관심 없이 살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유튜브가 갑자기 시계 영상을 몇 개 띄운다.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만 보여주는 줄 알았던 유튜브는 관심사의 확장을 통해 더 오래도록 그들의 플랫폼에 머물기를 원했던 모양인지 가끔 내 관심사와 상관없는 영상들로 후킹 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들의 낚시질은 미끼를 잘못 던진 초보 낚시꾼처럼 구독자의 입질을 유도하는 데 있어 실패할 때가 많지만 이번만큼은 성공적인 미끼를 던진 듯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작스레 나타난 시계 영상을 하나씩 보다가 그만 시계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시계 영상을 며칠 보다 보니 취미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류의 다양성도 다양성이지만 하나의 취미 안에서도 얼마큼의 자기만족을 실현시킬 것인지에 대한 기준에 따라 그 깊이는 천차만별이었다. 누군가는 저가 마이크로 브랜드 시계들로 단순히 디자인적인 재미를 충족시키며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특정 브랜드에 꽂혀 해당 브랜드 제품을 모델별로 모으는 수집가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큰돈을 들여 소위 말하는 명품 시계, 하이앤드급 시계를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만족감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생각하면 경제력에 따라 자연스레 구분 지어질 수밖에 없는 아비투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시계에 들이는 정성과 비용이 반드시 개인의 경제력과 정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생소하기만 했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쁨에 이것저것 살피다 보니 시계의 세계는 자동차의 세계 이상으로 촘촘하게 짜인 계급구조가 존재했다.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저렴한 시계부터 돈이 있어도 구매자가 그간 구입한 시계 이력을 보고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와 구매자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시계를 팔지 말지 결정한다는 수백억을 호가하는 콧대 높은 브랜드까지, 이토록 촘촘하게 가격대를 구성하고 있는 시계라는 취미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돈이면 조금만 더 보태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짝퉁"에 대한 생각이다.  


시계 브랜드는 자신의 역사를 얼마큼 구축했는가, 시계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는가, 얼마나 독창적이며 아름다운가를 통해 그 가치를 평가받는다. 오래되었고, 한 획을 그었으며, 오리지널리티를 보유한 것, 이는 비단 시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영역에서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평가의 기준점이다. 그런데 자본이 부족해서일 수도, 기술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창의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어떤 브랜드들은 독창성을 포기한 채 기존의 명품으로 인정받는 브랜드 제품의 디자인을 모방한 제품들을 출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대중은 오마주, 카피캣(패러디), 짝퉁이라 부른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오마주는 기존에 인지도 있는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으나 그래도 양심과 본인 브랜드에 대한 자존심이 있는 터라 나름의 각색을 통해 약간의 변화를 꾀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뜻한다. 카피캣은 오마주와 비슷하지만 어떤 변주 없이 거의 기존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뒤 브랜드만 바꿔 달아 출시하는 것을 뜻한다. 오마주와 카피캣 제품은 그래도 남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짜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저렴한 가격으로 명품과 비슷한 기능과 디자인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력이 충분치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 있어서 대체품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뮤지컬과 오페라를 접하기 힘든 사람들이 대중가요로 음악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짝퉁은 오마주와 카피캣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짝퉁은 본인이 오리지널인 척을 한다. 브랜드 로고도 기존 명품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 때문에 눈이 밝지 않은 이상 진품과 짝퉁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짝퉁은 사기로 간주하지만 오마주와 카피캣은 제품으로서 나름의 인정을 받는다.


정확한 정의는 아니겠지만 암기식으로 머릿속에 쉽게 담아두기 위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면 오마주는 존경, 카피캣(패러디)은 재미, 짝퉁은 거짓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들 셋은 하나의 통점이 있다. 언젠가 오리지널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온갖 짝퉁(사기꾼)들은 설령 지금은 짝퉁일지언정 언젠가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생성할 수 있게 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봉준호나 박찬욱 감독처럼 지금은 대가의 반열에 오른 영화감독들 역시 한때는 자신이 존경하는 영화감독의 작품을 패러디하고 오마주 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싹틔우기 위한 준비를 해오던 과정이 있었다. 독창성과 오리지널리티는 그렇게 생성된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딘가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곡히 쌓으며 갈고닦은 기술과 정신이 좋은 기회를 만나 세상에 드러나는 것. 차곡히 자신만의 길을 닦아내고 있을 모든 예비 오리지널을 응원한다. 그래도 짝퉁은 나빠요.  

작가의 이전글 좋은 세상을 보려거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