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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들의 문학시간

직업인으로서의 수업

by 정 호
첫 학교가 지긋지긋했다.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자주 울었고 내 몸을 돌보지 못해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중략- 그렇게 첫 학교에서 5년을 채우고, 도망치듯 과학고로 자리를 옮겼다. 과학고에서의 국어 수업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수능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국어 과목의 입시 부담이 크지 않았다. 실제로 과고 학생들은 문과 과목의 성적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다. 일반고에서 중요 과목이 국영수라면 이곳은 수물화생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대우가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의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수업을 기획하고 꾸려나갈 수 있으니까. 그건 정말이지, 아... 새로운 세상이었다. - 우리들의 문학시간 -

인간은 어떠한 제약 없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낀다. 그것은 창조에서 기쁨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며 자존감과 직결된다. 저자는 그렇게 첫 번째 학교에서 느끼지 못한 창조의 기쁨을 두 번째 근무지인 과학고에서 충분히 만끽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문학을 사랑하는 한 국어교사는 그렇게 자신의 수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기록하며 자신만의 결과물을 창조한다. 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궁극의 기쁨을 체험했을 교사의 마음을 상상하면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 학교에서 느꼈을 좌절감과 무력감이 떠올라 씁쓸함이 더 오래도록 머무른다.


교사로 생활하다 보면 아이들과 궁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해는 빨리 올해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아이들과 일 년을 보낼 때도 있고, 어떤 해는 눈물이 날 만큼 이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해도 있다. 같은 아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교사는 아침에 그 아이를 떠올리면 출근하는 것이 싫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어떤 교사는 그럭저럭 견딜만해하는 것을 보면 인간관계의 역학은 어른과 어른, 아이와 아이 사이에서 뿐 아니라 아이와 어른 사이에도 존재함이 분명하다. 저자는 과학고로 옮긴 첫해 맡았던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바람에 3년을 연달아 학년을 따라 올라가며 아이들과 깊은 교류를 나눈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교사로서는 평생 기억에 남을 3년의 교직생활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어찌 그 기쁨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함께 시집을 꺼내 읽는다. 노래는 심장에 박힌다는 최두석 시인의 시구를 빌어 시는 본디 노래에 가까우니 시 역시 심장에 박힐 수밖에 없음을 아이들과 함께 느낀다. 시만 읽으면 자칫 아이들이 고루하게 느낄 수 있으니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함께 엮어 가사를 음미하도록 돕는다. 소설을 읽으며 사회인식과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영화를 보며 서로를 이해한다. 초등교사이기에 중등교사의 수업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이런 수업 방식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수업 방식은 아닐 것이다. 이미 많은 국어 교사가 이런 방식의 수업을 시도했거나 시도하거나 시도하려 하고 있을 테지만 저자가 첫 번째 학교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한 여러 제약 때문에 충분한 깊이에 도달하기 어려움을 겪고 있을 테다.


저자 혼자서만 만족하고 끝낸 수업이 아니라는 것에 이 책의 의의가 있다. 학생들의 후기나 편지, 수업시간에 제출한 글을 통해 학생들 역시 저자의 이런 종합적인 탐색이 바탕이 되는 수업으로 어떤 만족감을 느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어교과가 입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과학고라는 특수한 환경과,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 능력과 태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조건이 결합되었기에 발생할 수 있었던 기쁜 조율의 결과물이었을 테다.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배움이 있는 수업, 모두가 만족하는 수업, 교사들은 늘 그런 수업을 꿈꾸지만 이는 굉장히 실현가능성이 낮다.


교육은 참 어렵다. 가르쳐야 하는 내용에 있어서도, 가르치는 형식에서도, 가르친 뒤의 평가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도 모두를 만족시키거나 모두에게 이로운 방식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 자신과 학생에게 이로운 방식을 찾아내려 애쓰는 교사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들을 제발 가만히 좀 놔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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