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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17. 2023

아이들은 즐겁다

밝아서 슬픈, 슬퍼도 밝을.

주인공 다이는 혼자인 시간이 많다. 엄마는 아파 병원에 누워있고 아빠는 늦은 밤중에도 일거리가 생기면 나가야 할 정도로 바빠 가정에 살뜰하게 신경을 기울이지 못한다.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의 어린아이는 그렇게 외롭게 자신의 시간을 채워간다. 영화의 배경은 주로 학교와 병원이다. 영화 초반 병문안을 온 다이를 배웅하며 혼자서 신발 끈을 묶을 수 있도록 가만히 지켜보며 가르쳐주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별이 멀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다이는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자주 들른다. 하루는 병원 가는 길에 있는 꽃집 앞에 놓인 작은 꽃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화분 하나를 사간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엄마에게 속삭인다.


다이 : 엄마 여름에 노란 꽃이 피니까 그때면 엄마 집에 오니까 우리 같이 그 꽃 보자

엄마 : 응? 응...


희망을 바라는 다이와 희망을 잃은 엄마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각자의 미래를 준비한다. 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애틋함과 비통함, 무력감을 한참 넘어 포박된 언어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서성댈 수밖에 없다.


다이는 전학생이다. 전학 온 다이에게 민호와 유진은 서슴없이 다가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지트를 다이에게 소개하며 순식간에 삼총사가 된다. 고 뛰놀며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 허락된 충만한 기쁨을 누린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의 화신이라도 된듯한 다이는 특유의 표정으로 그 어둠을 잘 갈무리한 채 살아간다. 단짝친구 민호, 유진과 함께 놀 때면 세상 근심이 없는 아이처럼 환하기까지 하다.


그런 다이가 영화에서 두 번의 거짓말을 한다. 그 거짓말은 자신의 당황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지만 이해심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아이들의 세상에서 다이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어른들의 세계라면 모르는 척 눈감아주고 넘어갈법한 일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달랐다. 그들은 배려와 침묵보다 사실과 거짓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첫 번째 거짓말, 엄마의 병문안을 왔다가 병원에서 단짝 친구 유진을 만난다. 왜 이곳에 있냐는 유진의 질문에 당황한 다이는 아빠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한다. 두 번째 거짓말, 수업 중 주말에 뭐 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다이는 엄마 아빠와 즐겁게 여행도 다녀왔고 맛있는 것도 먹었노라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데 어떻게 놀러 가느냐며 아이들은 순식간에 다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간다. 늘 씩씩하던 다이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다. 떤 거짓말은 너무도 처량해 도무지 직면하기 어렵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아이들이 내놓는 서투른 언어가 그렇다.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운 다이는 퇴원하고 집에 가면 안 되느냐고 엄마를 졸라댄다. 다이의 말에 엄마는 무언가를 체념한 듯, 혹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퇴원한다. 엄마와 함께 집에 온 다이는 단짝친구 민호, 유진과 함께 다신 없을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영화에서 다이가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슬픈 장면으로 기억된다. 다이를 위해 무리해서 퇴원을 했지만 몸상태가 악화되어 며칠 못 가 아예 요양 병원으로 다시 입원하는 다이의 엄마, 다이와 엄마 모두 천국에 온 것처럼 느껴졌을 행복한 시간은 그렇게 짧디 짧게 끝나고 만다. 이후로 연이은 악재가 다이를 강타한다. 학교 뒷산에 있던 아이들의 아지트 사라지고 단짝친구 유진의 할머니 뺑소니로 사망한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유진은 유산을 노리는 친척들로 인해 전학을 간다. 엄마의 퇴원과 함께 행복해질 줄 알았던 다이는 그렇게 소중한 것들 하나씩 잃어버린다.  


슬픔에 빠져있던 다이는 엄마가 입원 요병원의 명함을 우연히 발견하고 엄마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단짝친구 민호와 유진을 비롯하여 새침데기 같지만 선하고 지혜로운 시아와, 몸싸움까지 벌였던 같은 반 친구 재경의 도움을 받아 다이는 인천에서 청주까지 이동하며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도착한다. 하지만 다이가 마주한 것은 상태가 악화되어 산소 호흡기를 차고 있는 엄마,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엄마와 마주한 다이는 그 순간이 마지막인 것을 직감이라도 한 듯 담담하게 병원에 찾아온 이야기를 건넨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들고 온 꽃이 망가져서 어디에 심었는지, 왜 심었는지, 그리고는 벌레에 물리지 말고 잘 자라며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아직 엄마와 헤어질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어린 다이는 엄마를 떠나보다.


엄마는 그간 다이를 생각하며 적어둔 일기를 남기고 떠났다. 아빠는 엄마의 일기를 다이에게 전달한다. 다이는 엄마가 남긴 일기를 읽는다. 다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이 다이의 마음에 남았을까, 일기를 쓰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별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홀로 아이를 키우고자 마음먹은 새아버지의 부성은 어떤 종류의 책임감일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무거운 질문들은 하나하나 답을 찾기도 전에 순식간에 머리에서 가슴으로 밀어닥친다. 먹먹해진다.


영화의 중간중간 다이가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들이 있다. 엄마의 병문안을 가며 쪼그려 앉아 바라보던 꽃집의 꽃, 옆 친구 시아가 교실에서 쌓아놓고 읽던 책, 운동장에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진료 후 퇴원하는 유진과 할머니, 받아쓰기에서 백점을 맞아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자랑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 주인공 다이가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게 함으로써 감독은 각각의 소재가 어떤 의미를 함의하고 있음을 의도했으리라. 소재의 개별적 함의는 다를 테지만 그것들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결핍과 그리움이다. 어쩌면 다이를 통해 감독은 아이들이 느끼고 있을 결핍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꽃을 보며 자신을 떠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사랑의 결핍),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한 것을 잔뜩 가지고 있는 친구에 대한 부러움, 무한할 것 같은 어린이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늘 시간이 없어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 살뜰하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고받을 대상의 부재(유진과 할머니),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 줄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 화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렇게 아이들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했구나.


엄마는 죽었고 슬픔이 찾아왔지만 아빠와 다이는 다시 또 일상을 살아간다. 웃으며 집을 나서고 친구와 함께 뛰논다. 전학 간 유진이 방학과 함께 찾아온다. 삶이란 그런 것, 슬픔이 있지만 기쁨도 있는 것, 헤어짐이 있지만 반가운 만남이 기다리는 것, 결핍과 그리움을 피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희망의 조각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것, 그렇게 살아갈 다이의 앞날을 응원하며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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