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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Nov 23. 2023

코리아

구조 속의 인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힘이 있다. 언젠가 분명히 일어났던 현실의 일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피부에 직접 찬물이 와닿을 때 차가움을 느끼듯 우리의 현실 감각에 와닿아 간이나마 우리 정신 각성킨다.  교과 가르치며 통일에 대해 공부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 "코리아"는 실화의 힘을 바탕으로 남북 관계에 대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준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실화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도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와 더불어 세월이 지난 영화를 볼 때면 이제는 대스타가 돼서 한 영화에 모이기 힘들어 보이는 배우들이 한 장면에 담겨있는 모습을 보는 재미와, 어느덧 대중에게 잊힌 배우들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개봉한 지 오래된 영화만이 갖는 매력이다.


"남조선보다는 미국이 더 잘살디 않갔어? 그럼 정화동무는 미국 가서 살디?" 북한에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며 남쪽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냐는 현정화(하지원)의 질문에 북한 선수 리분희(배두나)는 답한다. 북이 남에 대한 이미지를  조작하듯 어쩌면 남한 역시 북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 강화시켜 왔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당연한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북에 가본 적이 없기에 막연하게 북한 국민들은 모두 가난하고,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리라고만 생각했지, 겁박 때문이 아닌 자발적으로 국에 류하는 생각을 하리라 생각 못했던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남한과 북한 선수들은 낯섦 속에서 경계심을 갖고 서로를 마주했지만 함께 지내며 서로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통의 목표를 두고 국가대표 선수로서 비슷한 삶을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과정 속에 사랑과 우정이 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나도 연정동무가 싫딘 않습네다...이러다 마음속에 정분이라도 나면..." 남한 선수였던 연정(최윤영)의 고백에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는 북한 선수 경섭(이종석)의 마음은 어땠을까. 정을 마음에 품고도 확정된 이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은 고통일 뿐이다. 그렇게 분단은 젊은 청춘남녀가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게 한다.


"난 뭐라고 인사해야 해... 연락할게도 안 되고, 편지할게도 안 되고, 난 어떻게..." 회가 끝나고 선수단은 각자 남과 북으로 헤어져야만 한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탑승하려는 리분희(배두나)를 끌어안은 채 현정화(하지원)는 무어라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른다. 친구든 가족이든 헤어짐의 순간에 우리는 늘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에 보자", "다음에 볼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 "연락할게", 우리에겐 언제고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는 무언의 확이 있다. 하지만 남과 북으로 갈라진 세상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다음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언어에 불과하다.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통일의 당위에 대해 설명하라고 한다면 사실 교사인 나조차도 이젠 교과서에서 학습한 내용 이상의 것을 떠올리기 어렵다.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 역시 반박하기 어려운 나름의 근거들이 충실히 그 자리를 견고하게 지켜내고 있다. 사실 모든 대립되는 의견들이 그러하듯 통일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이득과 손해, 그리고 각자의 당위 역시 너무도 첨예하게 서로의 목줄을 겨누고 있어서 무엇이 정답이라 선뜻 말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분단국가라는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 거시적 구조에서 답을 찾기 어려울 때, 미시적인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것도 어쩌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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