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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an 20. 2024

교사가 고통스러운 이유

이제 10년 차.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1년 내내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변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나쁜 어른이 있듯 나쁜 아이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나쁜 아이와 나쁜 어른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어쩌면 외부의 환경이나 조건에 의한 변화는 그저 공염불에 그치고 말뿐, 나쁜 아이들이 그대로 자라 나쁜 어른이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린 시절 좋은 어른이 곁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못된 아이가 막돼먹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수많은 교육적 언어들이 교실살이 10년 차에 접어들자 무용하게 느껴진다. 갖은 노력을 다해도, 온 마음을 기울여도, 변하지 않는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아이들은 소수이지만 언제나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소수라는 존재다.


교사들은 선하다. 모두가 선한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선한 편이다. 직업적 특성상 올바름에 대해 매일 이야기해야 하며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나마 애쓰고 노력하려는 삶의 태도를 고수한 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교사다.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직업을 떠나 어떤 인간이든 빠지지 않을 수 없는 함정이겠으나 교사들은 일반적으로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꽤 큰 편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이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비중 또한 높은 편이다. 교사들은 자신이 뱉은 말과 스스로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직업적 순수성이 침해됨을 알아차리고 자괴감을 느끼며 더 이상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교사로서 사명감을 가져야 하느냐고, 그냥 월급이나 받으면 그만인 직장인이라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양심을 외면하지 못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근하며 살아간다. 힘에 부치고 맥이 빠져도 사회적 약자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사회 안전망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이상 아이의 손을 놓기가 힘들다. 그래서 교사들은 늘 스스로 정신무장을 한다. 변하겠지, 내가 저 아이 주변에 유일한 어른일 수도 있을 텐데, 사랑을 못 받아서 그렇겠지, 알지 못해서 그렇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매일 변화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간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도무지 자신이 하는 일이 어쩌면 무용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허함을 버텨내기 힘든 탓이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매일을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가며 살아도 "툭"하고 맥이 풀려버리는 날이 있다. 많은 교사들이 학급에서 일어난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개인적인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교사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감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회적 시선, 우리 반에서 일어난 문제상황이 마치 내 능력부족 때문에 벌어진 것 같다는 일종의 업무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것 같은 수치심, 어린아이들 다툼하나 해결하지 못해 끙끙대느냐는 익명의 존재들로부터 전달받는 무언의 모멸감, 그 외에도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이유로 교사들은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고 끙끙 앓다가 그 선량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능성, 희망, 교사들이 쓴 책을 보면 하나같이 긍정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려 애쓴다. 교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떠밀려서인지, 교사라는 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는 소리를 담은 책을 아직까지 만나진 못했다. 교사도 사람이다. 교사를 마치 예수나 부처처럼 무한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으로, 혹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듯 강요하는 폭력적인 시선에 지친다.


도서관에서 떠들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그러나 늘 도서관에서 활개를 치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6명의 아이들이 점심식사 후 도서관에 몰려가 조용히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들을 방해한다. 그들은 뛰고, 떠들고, 햄버거 놀이를 하고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욕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선량한 피해자들은 교실에 와 담임에게 사건 경위를 밝힌다. 올바르지 않은 행위와 행위의 대상자를 알게 된 이상 교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선량한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줘야 하고 잘못된 행위에 대해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은 발화자의 주관에 따라 전달되는 것이기에 6명의 아이들이 혹시 억울함이 있지는 않은지, 고발자들의 말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명 한 명 사실 확인을 한다.


교사: A야 도서관에서 떠들고 뛰어다녔어?

A: 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고요 쟤네들도 도서관에 앉아서 필사하고 있었어요.

교사: 쟤들이 도서관에서 필사한 것과 네가 뛰고 떠든 것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어?

A: 쟤네들도 도서관에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했잖아요. 도서관은 책 읽는 곳 아니에요?

교사: 도서관은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숙제도 하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야. 뛰어노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인데? 너는 스스로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 안 해?

A: 잘못은 했는데...

교사: 그런데?

A:....


교사: B야 너는 도서관에서 웃고 떠들었어?

B: 네 웃고 조금 시끄럽게 하기는 했는데요. 저는 그냥 책 제목이 웃겨서 웃은 거예요.

교사: 책 제목이 뭐였는데?

B: 기억이 안 나요

교사: 10분 전에 도서관에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 웃겨서 웃었을 정도면 기억이 날 것 같은데.

B: 모르겠어요 진짜로 기억이 안 나요

교사: 그럼 웃고 떠들기는 한 거야?

B: 네

교사: 그럼 잘못한 거라는 생각은 들어?

B: 네 죄송합니다~~~~ (장난스럽게)


교사: C야 너는 도서관에서 혹시 욕했니?

C: 아니요?(눈을 동그랗게 뜨며 천진하게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교사: 그래? 여러 아이들이 네가 도서관에서 욕하면서 떠들었다고 하던데

C: 누가요? 저 욕 안 했는데요.

교사: 음... 4명이 와서 정확히 장소와 네가 한 욕 워딩을 똑같이 말했는데 그럼 그 4명이 거짓말을 하는 건가?

C: (피식 웃는다)

교사: 왜 웃는 거야?

C: 웃겨서요

교사: 뭐가 웃긴데?

C: 아니에요 그냥요.


갑자기 학원 선생님들이 부러워진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돈을 내고 수강하는 학원생들은 저렇게 밑도 끝도 없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 다음으로 가장 자신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교사에게 저토록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일 년 내내 보이는 아이들을 대체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좋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이성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한다. 알아듣게 얘길 해야지,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지, 충분히 듣고 억울한 점이 없도록 해야지...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을 어른 대접하지 않듯, 아이답지 못한 아이 역시 아이 대접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인정하지 않는 모습, 남 탓부터 하는 모습,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모습,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오직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잘못이 면죄되는 세상을 과연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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