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호 Jun 10. 2024

하루가 너무 빨라 그치 아빠

시간의 의미

아빠: 조금 있다가 동생들 오면 동생들이랑 같이 놀아 알았지?

아들: 좋아, 근데 아빠랑 놀고 싶으면?

아빠: 아빠는 어른들하고 이야기하고 놀아야지

아들: 아빠랑 블록도 가지고 놀고 싶고, 보드게임도 하고 싶고, 레고 조립도 하고 싶으면?

아빠: 내일 또 놀 수 있잖아

아들: 다 하고 놀고 싶은데 하루가 너무 짧아 그치 아빠


주말을 맞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친척들이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친척 중에는 아들보다 한 살, 네 살 어린아이들이 있는데 혹여나 아이들끼리 싸울세라 늘 당부의 말을 하느라 바쁘다. 동생들과 노는 것도 좋지만 아빠와 놀고 싶다는 아이는 하루가 짧다며 장탄식을 내뱉는다. 아이와 놀며 몸은 고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아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아이도 나름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평일에는 저녁 두세 시간밖에 부모와 함께 놀 시간이 없으니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다. 그것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생계와 각종 해결해야 될 의무를 짊어지느라 아이와 함께 보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간은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리기 일쑤다.


우리는 늘 부족한 시간에 허덕인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도 부족하고 잠잘 시간도 부족하다. 취미 생활을 할 시간도, 자기 계발할 시간도, 친구 만날 시간도 부족한 우리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바빠 늘 시간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돈을 많이 벌어 결국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을 사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럴 거면 애초에 돈을 좀 덜 벌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결코 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균형감 같은 헛소리를 언젠가 이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다시금 현실로 고개를 돌린다.


바쁨 속에 쉼이 있어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슬픔 속에 기쁨이 있어야 진짜 기뻐할 수 있다는 말처럼 인생은 정말 끝없는 고난과 고통 사이에 잠시 쉼표를 찍어가는 여정일 수밖에 없이라고 생각하니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인가 싶은 마음에 잠시 위로가 되다가도 정말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인가 싶은 마음이 동시에 꿈틀대는 것 또한 막을 길이 없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하루가 너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쁠 일이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겨를이 없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수로 막아내야 할 헛헛함일까.


바쁨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 아니 바쁨 자체보다는 무엇 때문에 바쁜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테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쁜 것이고 나를 바쁘게 하는 모든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두 내팽개쳐 버리자니 모든 것이 망가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무섭다. 지난 주말 아주 오랜만에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하루를 맞이했다. 가만히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가슴속에서 행복감이 피어오르며 입에선 절로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책무라는 것은 인간에게 크나큰 행복과 자기 효능감을 가져다주지만 너무 오랜 시간 책무에 시달려온 사람은 누적된 피로감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드러누워 있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미안해하지 않고 불편해 하기》 출간 알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