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by 정 호

한중록 서문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열 쪽을 채 읽어내지 못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책은 한중록. 사도세자의 부인이라는 것 말고는 혜경궁 홍 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한 인물과 그 시대에 대한 지식이 빈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많이 들어는 보았으나 읽어본 적도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었기에 지식의 습득이라는 차원에서만 생각해보았다면 마땅히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업에 종사하고 있어서인지, 무언가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무엇이든 마땅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압박감 비슷한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하지만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 눈앞에 펼쳐진 예스러운 문체가 글을 쉬이 읽는 것을 방해했다.

쉬운 글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요 근래 수필이나 에세이에 빠져 있어서 그랬을까. 옛 문체로 쓰인 조선시대 배경의 책을 읽자니 도무지 나의 눈과 마음이 힘들어서 독서가 즐겁지 않은 고행처럼 여겨졌다. 내용과 작가가 훌륭하다는 것은 말해 무엇하겠으며 시대적 사료로써의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고,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해두었기에 어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와 맞닿아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이 위대한 한국의 고전문학이 나에게는 왜 이리도 버겁게만 느껴지던지, 죄책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나는
문학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읽어야 할 필독도서로 선정되어 도서관이나 서점 한편에 붙어있던 문학작품 목록을 살펴보며 숨이 턱 하고 막혔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입시와 결부되어 있었기에 재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이것 말고도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스러운 문체 때문이다.


대저 이 일에 대해 영조를 원망하며 경모궁이 병환이 없으신데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도 하고, 또한 아버지께서 뒤주를 들이게 했다고도 하니, 이는 실상과 어긋날 뿐만 아니라, 영조, 경모궁, 정조 모두에게 망극한 말이라. "애통은 애통이고 의리는 의리라'는 논리만 잘 붙잡으면 이 사건의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가 무엇이 어려우리오. 내 이 글의 초고를 만들어놓고도 미처 주상에게 보이지 못했는데, 최근 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순궁이 '자손이 알게 하는 것이 옳으니 써내라'청하여 비로소 가까스로 써 주상께 보이니, 내 심혈이 이 기록에 다 있는지라. 새로이 심혼이 놀라 뛰고 간장이 무너져 글자마다 눈물져 글씨를 이루지 못하니,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다시 어이 있으리오. 원통코 원통토다.
- 한중록 서문 중 -


수능을 두 번 보았고, 두 번 모두 언어 영역에서 한 문제밖에 안 틀렸을 정도로 글을 빠르게 읽어내고 내용을 파악하고 숨어있는 의도까지 캐치해 내는데 훈련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저런 문장으로 가득 차 있는 500페이지의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물론 수능 언어가 문해력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겠으나 나름대로 거의 전 국민이 치르는 시험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갖춘 공신력 있는 시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야 셀 수 없을 만큼 존재할 것이고, 내가 똑똑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평균보다 문해력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고전문학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도 작아지는가.


두 번째 이유는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이유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할 텐데, 한 문장 안에 의식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단어들과 현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서술어 등이 혼합되어 있어 무의식적으로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치 않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양치질을 하는 과정에서는 나의 뇌가 특별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습관적인 행위이기에 특별한 사고를 동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칫솔의 위치가 바뀌어 찾아야 한다거나 샴푸가 떨어져서 새로운 샴푸를 개봉해야 하는 일에는 우리 뇌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이런 사소한 차이가 발생할 때 우리는 에너지를 쓴다. 그래서 무의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에너지를 아껴주어 우리가 쏟고 싶은 곳에 충분한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해석해 나가면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이것은 개인의

독해력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고전문학 정도를 읽어내는 일은 눈감고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초등학생에게 뉴욕타임스를 읽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받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들로 가득한 고전문학을 읽어내는 일이란 추상미술 작품으로 가득 차있는 미술관에 가서 그 의미를 하나하나 해석해내라고 요구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


고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전은 그 예스러운 문체에서 발휘되는 맛과 멋이 있다. 나도 그 맛과 멋을 느끼며 한 줄 한 줄 곱씹어가며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한번 읽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심오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면서 그것을 표현해내는 문장까지도 어려운 책을 오랜 시간을 공들여가며, 심지어 여러 번 읽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내며 기어코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과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때때로 고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 권위를 획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에 도달한 것과 같은, 마치 박사학위 소지자가 그것에 대해 정말 정통한 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생 많이 했겠구나, 아는 것이 많겠구나 하고 으레 짐작하듯 고전 역시도 비슷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에 가서 한 마디라도 하려면 뭐라도 읽어가야 할 텐데,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의 그 자괴감과 스스로가 변변치 못하다고 느껴지는 감정과 마주하기 두려워 읽기 힘든 책을 꾸역꾸역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돌이켜보면 비슷한 과정을 겪었던 적이 많다.

체면 때문에, 성취 때문에, 약속 때문에 하기 싫은 것들을 억지로 참고 해냈던 기억들. 그것이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인내력은 최대치로 발휘되기도 할 테지만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일들에 있어서 인내력은 오래된 배터리처럼 금방 방전되어버리곤 한다.


이번엔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비록 모임 날짜가 다가오고 있으나 그 시간에 읽고 싶은 다른 것들을 읽고, 쓰고 싶은 나의 것들을 쓰기로 했다. 하여 고전문학 한 권을 읽어내는데 시간을 쏟았더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나의 글을 몇 편 쓰기도 했다. 위안이 됐다. 하지만 한쪽도 읽지 않고 독서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이 과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닐까, 약속을 어기는 행위는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불편함이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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