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행사에서 출입구 통행 도우미를 맡게 되어 교문과 본관 사이에서 방문객들에게 행사장소 안내를 돕게 되었다. 행사 시작 삼십 분 전 즈음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십분 전후로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동선 안내, 입차 출차 관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어느 정도 올 사람들이 다 왔는지 한가해지기 시작했다. 해는 저물었고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를 꺼내 입고 가만히 밤하늘을 응시하며 뒤쪽에서 들려오는 강당의 시끌벅쩍하게 음악과 함성이 뒤섞인 소리와 눈앞에 펼쳐진 교문 밖 동네의 고요한 적막 사이에서 기묘한 평안함을 느끼려던 찰나, 무언가 그릇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쨍그랑"
방금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아 귀를 쫑긋 세워 소리의 근원을 더듬어본다. 한참 동안 주의를 집중해도 더 이상 비슷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직 행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서둘러 행사장 밖으로 나서는 방문객들을 응대하느라 소리에 대한 관심은 이내 사그라든다. 그렇게 날카로운 소리에 대한 기억이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다른 종류의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려온다.
"퍽"
이번엔 무언가 둔탁한 것으로 내려치는 듯한 소리다. 망치나 야구 방망이 같은 둔기류로 식탁 혹은 장롱 같은 가구를 내려친 듯한 소리. 아까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대체 무슨 소리일까. 교문 앞은 오래된 2~4층 상가주택이 줄지어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이 곳곳에 살고 있는 주택들. 빌라와 주택과 상가주택이 고 밀집된 지역. 기초학력부진 학생이 학급의 1/3이고 편부 편모 비율이 1/4이며 지각, 결석 등 학생의 출결상황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학부모와 연락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학군. 저 날카롭고 둔탁한 파열음이 내가 아는 어느 아이의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력의 신음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멀거리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불쾌감은 더욱 증폭된다. 어디 즈음에서 나는 소리였을까. 어느 집이었을까. 교문 바로 앞 1층에 치킨집이 있는 상가주택이었을까. 그 옆 문구점이 딸린 3층 집이었을까. 불쾌한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다시 한번 소리가 들린다면 그 소리의 위치를 명확히 잡아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순 앞에서 부슬비를 맞고 서 있었다.
"우당탕탕"
내가 서 있는 본관에서 교문까지의 거리는 대략 50미터 정도로 짐작된다. 소리의 출처를 정확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알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정문에서 우측, 학교 운동장 끝에 있는 그네와 시소 뒤편 언저리 즈음의 집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다. 위치를 대략 파악하고 나니 그 근처 집들로 시야가 집중된다.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집이 있는지, 어린아이의 뜀박질이 조명 빛을 받아 창문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집이 있는지, 비명이나 고성이 새어 나오는 집이 있는지.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휴대폰 전화 어플에서 키패드를 열어 112를 누르려는 바로 그 순간.
"위이이잉 위이이잉"
"드르러러러럭 드러러러러럭"
"퍽퍽 퍽퍽, 우직 우직, 챙챙 챙챙"
전동드릴이 돌아가는 소리와 동시다발적으로 무언가를 부시고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폭발적인 굉음이 들려오자 오히려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침 내가 예상했던 주택 앞쪽으로 무언가 인테리어 자재를 잔뜩 실은 포터 한대가 주차하는 모습이 보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작업복을 입은 인부 둘이 공구와 자재를 나르는 모습도 확인됐다.
"하.."
다행이다. 혼자만의 공상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나도 모르게 낮은 한숨과 함께 어깨를 떨어뜨린다. 경직되어 있던 뒷목도 조금은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 혼자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생각에 헛웃음도 난다.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내일 아침은 유독 아이들이 반가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교문 너머 주택가를 망연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