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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별하지 않는다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

by 정 호

소년이 온다를 쓴 뒤 후유증에 시달리던 한강 작가는 현실의 바스러짐을 느꼈던 모양이다. 죽음의 허망함,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밀착돼 있는 것인지, 생명이라는 것이 어이없을 정도로 약한 것인지 실감한다. 잠들지 못하는 날들과 가까스로 잠드는 날들이 이어지며 꿈과 현실의 간극은 점차 희미해진다. 고통의 기억은 현실만큼 생생한 꿈이 되어 의식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에 따라 꿈에서 깨어 있을 때는 몽롱한 상태가 되는 탓에 현실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진다. 그런 연유로 깊이 잠들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며 숨을 짧게 끊어 쉬게 된다. 유서를 써 두었고, 사방이 탁 트이는 공간을 걸을 때면 도로 건너편 건물들의 옥상에서 저격수가 사람을 조준하고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불안에 시달린다. 흩날리는 낙엽에서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겹쳐 보이고 껍질이 벗겨진 나무 기둥은 희끗한 살갗이 함부로 벗겨진 것처럼 보인다. 온 세상의 사물에서 그녀는 그날의 고통을 느끼게 되어버렸다. 그 선명한 고통과, 끔찍한 괴로움과 작별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작가 한강은 결국 작별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필사적으로 작별하고 싶었지만 작별하지 못했던 피동의 삶에서 기꺼이 작별하지 않겠다는 능동의 삶으로 돌입한다.


거리에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눈 닿는 이차선 도로 어디에도 차량이 다니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믿을 수 없이 느리게 떨어지고 있는 함박눈뿐이다. 허공을 가득 메운 눈송이들 사이로 선홍색 신호등이 켜진다. 버스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눈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것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래야지...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맞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레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 없이 사라진다. - 작별하지 않는다 89p. -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눈이 내린다. 눈에 대해 다양한 묘사를 하며 여러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낸 것 같다. 천천히 지표에 내려앉는 눈송이의 모습을 망설임과 연관 짓고 그 망설임을 비유하기 위해 차용한 생각과 표현이 경이롭다. 이 장면에서 눈은 위로를 건네는 존재다. 아주 조심스럽게, 내 서툰 배려가 혹여나 상처를 쓰라리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을 품은 채 머뭇거리며 그 움직임이 끝으로 갈수록 점차 희미해지며 가장 따듯한 마음을 차분하게 얹는다.


처음에는 새들이라고 생각했다. 흰 깃털을 가진 수만 마리의 새들이 수평선에 바짝 붙어 날고 있다고. 하지만 새가 아니다. 먼바다 위의 눈구름을 강풍이 잠시 흩어놓은 것이다. 그 사이로 떨어진 햇빛에 눈송이들이 빛나는 것이다. 해수면이 반사한 빛이 거기 곱절로 더해져,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가 바다 위로 쓸려 다니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거다. 59p

흰 털실로 뜬 모자를 쓴 것처럼 그녀의 머리에 눈이 쌓였다. 파카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내 두 손은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우리가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소금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95p.

눈의 속력은 이제 더 느려졌다. 속력에 반비례하는 듯 눈송이들은 더 커지고 촘촘해졌다. 장갑을 벗고 속눈썹에 내려앉은 눈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을 때마다 눈언저리가 젖는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이 어른어른 번져 보인다. 허리를 굽혀 운동화 위로 쌓인 눈을 털어내자 목이 짧은 양말 속으로 차고 축축한 눈송이들이 스며 들어온다. 106p

앞문이 열린다. 히터가 틀어진 차내의 축축한 공기가 밀려 나와 코끝에 닿는다. 면장갑 낀 손으로 변속기 레버를 쥔 운전기사가 노인에게 묻는다. 118p

커다란 광목천 가운데를 가윗날로 가르는 것처럼 엄마는 몸으로 바람을 가르면서 나아가고 있었어. 310p

한강의 문장은 묘사와 비유도 대단하지만, 장면을 그림처럼 그려내는데 탁월하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에서 느꼈던 경탄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동일하게 느낀다.



기온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폭우로 퍼부었을 밀도의 눈이다. 107p

가편집을 마친 인선이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모아 예비 시사를 한 영화에서 그 폭우의 장면은 '좋아, 내가 이야기해 줄게'라고 대답했던 노인의 일상 다음에 배치되어 있었다. 108p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109p

고밀도의 눈과 비, 이것들은 시야를 가리고 일상을 흐뜨러뜨릴 정도로 무자비한 존재이지만 그 광폭하게 휘몰아치는 형태와 달리 가장 고요한 위로 속으로 우리를 잠시 보듬어주는 존재다. 한강은 여러 문장을 통해 그 성격을 또렷이 드러내고자 한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134p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 견뎌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선이 제작한 세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러했고, 인선이 그러했고, 경하가 그러했다.


인선은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촬영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생존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 1940년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할머니의 치매에 걸린 일상을 다룬 이야기. 1948년 제주 4.3 사건에 관한 이야기. 인선이 제주에서 사고를 당해 급작스럽게 서울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경하에게 자신의 집에서 기르는 새들의 끼니를 부탁한다.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은 상황에서 애완동물의 끼니가 대수인가 싶지만 인선에게 새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다. 세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인선은 견뎌내는 사람들, 피해 입은 사람들, 그리고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집(심지어 제주도)에서 기르는 새의 끼니를 챙겨달라는 부탁을 해봤자 이를 어이없는 부탁으로 여길 것이 뻔하다. 하지만 경하는 다르다. 그녀는 인선과 같은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땅에 떨어져 바스러지는 낙엽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이고 벗겨진 나무껍질에서 살갗이 벗겨진 인간의 고통을 연결 지을 줄 아는 사람이다. 둘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무늬를 무의식에 새겼으리라. 그래서 경하가 인선의 부탁을 받고 서울에서 당일 비행기로 폭설이 쏟아지는 제주를 향해, 제주에서도 산속 깊숙한 곳에 외따로 떨어진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그 여정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설적 구성일리 없다. 그것은 꺼져가는 생명을 외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처절한 순례의 행군이다. 트남전의 피해자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을까, 독립운동을 하며 만주벌판을 헤매던 열여섯의 어린 소녀는 가슴에 어떤 뜨거운 불을 품고 있었을까, 4.3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았을까, 인선과 경하는 각자 무엇을 품고 버티어 낼 수 있었을까. 끔찍한 괴로움에 삶의 소진을 느끼면서도 결코 그 기억들과 작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바로 그 순간, 한강 작가의 마음속에는 어떤 뜨거운 것들이 솟아올랐던 것일까.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136p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15p

동일시, 작가 한강은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며 그것이 인간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칠십 년 전 내리던 눈과 오늘 내리는 눈이 생태계 순환의 메커니즘에 따라 같은 눈이라고 한다면 칠십 년 전 누군가에게 일어난 고통 또한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인류애적 사랑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는 건 그저 우연이라는 소리다. 누군가가 겪었을, 겪고 있을 불행이 나에게도 언제고 맹렬히 들이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직관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인류애적 사랑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돌아보지만 않으면 자유인데... 그대로 산을 넘어만 가면. 240p.

엎드려 고개를 숙이기 전에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이것을 보고 싶은가. 병원 로비에 붙어 있던 사진들처럼, 정확히 보지 않는 편이 좋은 종류의 것 아닐까. 256p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자유인데 어떤 연유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망각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언가에 발목 잡힌 듯 질질 끌리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만다. 그것은 후회, 공감 같은 어떤 멈춤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필연이다. 아니다. 때로는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어떤 끌림에 의해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번 알게 되면 절대 뒤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살다 보면 그런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 이 선을 넘어서면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순간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불현듯 직감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망설임이 찾아오는 것 또한 당연하다.


에필로그에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는 짤막한 문장 속에 한강 작가는 강렬한 의미와 다짐을 담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어떤 사건을 진정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인간은 오직 사랑하는 것만을 진짜로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들여다볼 노력을 기울이기에 인간은 자극에 취약하고, 몰입이 불가능한 존재다. 오직 사랑할 때만 인간은 그 내밀한 진실을 기꺼이 들여다볼 준비를 할 수 있음이다. 혐오의 시대, 갈등의 시대, 비이성의 시대로 점차 전환되어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 되기를 바란다"는 한강의 바람은 확하다. 인간이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회복과 치유의 근본 바탕이 될 인간성의 부활을 염원하는 그녀의 마음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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