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니까

모든 것의 뿌리이자 종착지인 그곳

by 정 호
아빠: 이 녀석은 악당인가 보다

아들: 응 맞아.

아빠: 동화책을 읽다 보면 악당들이 나오지?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들도 가끔 있어.

아들: 응 나도 알아.

아빠: 엄마 아빠는 좋은 사람 같아 나쁜 사람 같아?

아들: 좋은 사람

아빠: 왜 그렇게 생각해?

아들: 가족이니까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며 가끔 선문답을 할 때가 있다. 동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을 함께 바라보며 악인의 행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때로는 주인공 혹은 선인의 포지션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모순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다 가끔씩 잠시 멈춤의 순간으로 돌입한다. 그리고 그때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할 때가 많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입을 통해 좋은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는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아이의 생각이 궁금할 때가 많았던지라, 이번에도 별다른 생각 없이 왜 엄마 아빠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장난감을 사주니까, 나랑 놀아주니까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일순간 아내와 나의 호흡을 멈추게 만들었다.


가족이니까.


간단명료한 아이의 대답에 아내와 나는 동시에 헉하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고 몇 초간의 정적 속에서 우리는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일체감을 느꼈다. 그 일체감은 일종의 종교적 체험과도 비슷했다. 경외와 감탄, 감사와 희열을 느끼게 해 주었고 사랑과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아이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곁눈질을 하며 어서 빨리 다음 페이지를 읽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모든 것의 뿌리이자 종착지인 그것.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삶의 자세를 좌우할 수 있는 것, 과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고 미래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도록 할 수도 있고 절대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 타인을 사랑하고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몸에 스며들게 하거나 타인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스며들게 할 수도 있는 것, 가정과 가족이란 그토록 위대하고 강력한 삶의 터전인 셈이다.


아이는 그런 삶의 터전을 긍정한 셈이다. 엄마 아빠는 좋은 사람이고 그 이유는 그저 가족이니까. 가족은 좋은 사람들이 구성하는 공동체일 것이 분명하니까. 가족이 나쁜 사람일리 없으니까. 아이의 이 단단한 믿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감히 오만하게도,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그동안 잘못 살지는 않은 것 같다는 후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것이 설령 삶의 여러 측면을 종합하지 못한 단층적이고 허술한 평가라고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외눈박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순간 참아내기 어려운 감정들이 북받쳐 오를 때면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순간 부모는 다시 한번 태어난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아이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노라고, 그렇게 아이의 말 한마디는 존경하는 스승의 일갈 못지않게 부모를 성숙한 인간으로 인도하는 거의 유일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가정을 이룬 모든 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을 대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리고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가족은 모든 것의 뿌리이자 종착지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