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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구의 증명

우로보로스

by 정 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 구의 증명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소년 구와 소녀 담의 사랑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아름답고 어여쁜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동화 속 사랑과 달리 소설 속 사랑은 세속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파괴적인 속성을 반드시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높은 밀도의 삶을 살아내는 십 대 시절, 구와 담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다소 되바라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애정하는 마음 그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들과 친밀하게 지내던 어린 노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들은 그 죄책감이 서로를 할퀴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구는 자신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연상의 여인과 동거, 군입대라는 사건을 겪게 되고 담은 유일하게 자신을 보살펴준 이모의 죽음을 겪어낸다.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것일까.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어깨에는 구의 부모가 남긴 사채빚이 삶을 옥죄인다. 이리저리 도망을 쳐봐도 죽음과 세금처럼 빚 역시도 살아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구는 사채업자들에게 구타를 당해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하고 만다. 그런 구의 죽음을 마주하며 소설은 시작한다.


소설 구의 증명은 다른 무엇도 파고들 수 없는 압착된 둘만의 세계 밀도 있게 그린다. 세상에 오직 단 둘만 있다는 듯한 태도,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은 친밀한 밀착감과 그로 인한 완벽한 효능감. 그 자체로 너무나 광대하고 넓게 느껴져 확장이 필요 없는 우주. 그들의 사랑은 그랬다. 죽어도 좋을 만큼 좋았고, 집어삼켜 내 안에 가둬두고 싶을 만큼 서로를 갈망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기에 가능한 필연이다. 사고무친의 담과 유산이라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붙일 정도의 빚이 전부였던 구는 서로가 그렇게 완벽히 단절된 각자의 세계에서 한줄기 숨구멍이 되어줬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집착도 아니고 폭력도 아니고 광기도 아니다. 그저 사랑,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구와 담을 비난할 수 없다. 누군가의 사랑이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다른 형태로 비치는 것은 흔한 일일테니.


담은 구를 증명해야 한다. 아니 증명하려 한다. 세속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구의 삶의 불꽃이 처참히 꺼져버린 것을 목도한 순간, 그 바스러짐의 슬픔과 허무와 애통함을 꾹꾹 눌러 집어삼킨다. 집어삼킴으로써 구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와 함께하겠다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어 구의 삶과 자신의 삶이 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은 구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미 죽어 영혼만 남게 된 구는 담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곁에 담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적 장치는 그들의 절절한 사랑을 그렇게 조금 더 비춘다.


우로보로스. 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을 가진 이미지가 떠오른다. 자기 꼬리를 집어삼키고 삼켜진 몸뚱이가 끝없이 재생되는 형상인 우로보로스. 영원회귀, 영원, 불멸, 재생, 한. 혹은 오히려 정 반대의 의미인 '무'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는 종교, 철학, SF적 상상력이 동원되는 예술품들에서 차용하기 좋은 소재임이 분명하다. 담이 구를 삼키는 장면은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인 것 같은데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나와 함께 하는 한 너 역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의 사고일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한 여인의 처절함을 표현하기 위한 파괴적인 장치일까.


잘 모르겠다. 장치를 해석하고 숨은 의미를 찾는 일이 무의미해짐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그저 구의 바람처럼 담이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기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랑은 그렇게 기쁨의 포만감과 슬픔의 허기짐 사이를 무한히 횡단하는 것일까. 사랑이 무엇인지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 다양성에 놀란다.


"구야, 구야..."


소설 속에서 담이는 자주 구를 부른다. 진실로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하지만 구는 담이를 따듯하게 불러주지 않는다. 자신의 짐이 버거워서 사랑하는 담이의 이름을 차마 따듯하게 부르지 못한다. 그것이 담이를 더 괴롭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서. 담이를 떠나가게 하지 못하는 일인 것 같아서. 하지만 담은 말한다. 자신이 알코올중독에 걸리면 술잔을 빼앗지 말고 술을 따라 달라고. 안쓰러운 구와 담, 곁에 의지가 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의 삶이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담아, 담아, 너는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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