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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타인의 취향을 들여다보는 일

by 정 호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먼저 해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끼고, 앞서 그 길을 가본 사람의 자취를 훑어보며 배울 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봐온 영화와 책을 언젠가 한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슬슬 실행에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다"는 제목의 책은 마치 언제고 만날 사람은 만나고야 만다는 말처럼 필연의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80여 개의 영화 감상문을 엮은 520쪽의 두꺼운 책을 며칠간 재미나게 읽었다. 중에 내가 본 영화가 나오면 반가운 마음에 더 몰입해서 읽곤 했다. 마치 같은 영화를 보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감상하듯 나는 그가 적어 내려 간 영화에

대한 해석과 영화와 연결지은 다양한 배경지식들에 잔뜩 귀를 기울이며 읽어 내려갔다.


한 사람이 자신이 보아온 수많은 영화들 중 책으로 엮어내겠다고 고르고 고른 80편의 영화감상문을 읽고 있으니 책에 실린 영화를 하나하나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영화를 보며 느꼈을 감정들을 나 또한 느껴보고 싶다. 좋은 것을 추리고 엄선하여 차곡히 쌓아 책으로 만든 사람의 마음,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발굴하여 나누어주고 싶은 선량한 마음이다. 그 마음이 감사하다. 동시에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내가 보고 읽으며 느껴온 아름다운 것들을 갈무리하여 누군가에게 언젠가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책을 발견하여 책을 읽는 내내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김중혁 작가가 소개한 영화를 한 편, 한 편, 감상하기 위해 그가 쓴 영화감상문을 요약해 둔다. 그가 책에 기록해 둔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책을 더듬으며 다시 한번 그의 생각과 마주할 것을 분명히 안다. 미래의 일이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기쁨일 때 미래는 서둘러 현실이 된다.


하야오는 언제나 미래를 근심하고 과거를 반성했지만, 현재만큼은 유쾌하게 그려냈다. 65p



[패스트 라이브즈]

인생의 각 시절에 따른 내면의 변화


[가가린]

추억에 대한 영화(러시아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파리의 외곽 지역에 주택 단지 가가린)


[거미집]

한 두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복합성


[경계선]

견과 구분지음에 대하여


[괴물]

편견, 알지 못함, 다층성, 인식의 사각지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 증명, 자아성찰, 질문 그 자체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협력, 삶의 의지, 도전정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정직한 삶, 우직한 삶, 자기 투쟁, 자기만의 기쁨


[노매드랜드]

집이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은 자신과 닮은 가난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아니 난 홈리스가 아니야. 음... 그저 하우스 리스야. 두 개는 다른 거야.


[당신 얼굴 앞에서]

재를 바라보라, 해야 할 말을 잊지 말고 하자.

이혜영 배우의 멋진 수상소감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

긋지긋한 가족. 가까운 사람과 함께 살아갈 최고의 방법은 각자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인간은 모두 다르다, 쌍둥이를 만났던 이야기.


[더 파더]

알츠하이머에 관한 이야기.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의 소실이 불러오는 단절. 기억할 것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더 퍼스트 슬램덩크]

추억과의 만남. 왼손은 거들뿐.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죠? 저는 지금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명대사를 통해 삶의 통찰을 응시한다.


[돈 룩 업]

이미 늦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돈 룩업.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기


[드라이브 마이카]

아픔을 가진 사람 사이에 싹트는 신뢰. 더러운 손을 기꺼이 잡아줄 심력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야기의 힘. 상상력의 힘. 우리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 어떤 책은 분석하게 되고, 어떤 책은 감상하게 되고, 어떤 책은 체험하게 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

가상현실이 현실로.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다만 최대한 빠르게.


[리틀 포레스트]

위로, 음식, 계절


[말없는 소녀]

상처 주는 가족, 친밀하고 따듯한 어른 사이에서 성장하는 소녀


[메이의 새빨간 비밀]

성장, 부모로부터 독립, 내 안의 또 다른 나.


[미나리]

자연스러움 삶, 쓸모 있어야만 가치 있는 것인가.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자극적이고 통속적이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어당길 매력적인 이야기


[바쿠라우]

환경에 관한 이야기. 타란티노 감독의 호쾌한 액션 영화. 외부와 차단된 바쿠라우라는 가상의 공간. 그곳에 개발자들과 원주민간의 투쟁


[비밀의 언덕]

글쓰기를 소재로 비밀과 솔직함, 재능과 성실함을 대비시키는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아날로그 예찬, 느슨하고 느릿한 만남과 헤어짐(비포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소박함과 영광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주인공의 이야기. 사랑할 때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직면하는 이야기


[성적표의 김민영]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성적을 주고받는가(우정, 세월, 변화, 고양이를 부탁해)


[소리도 없이]

부끄러움에 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스프린터]

각자 다른 시기를 살아가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3명의 이야기.


[암모나이트/더 디그]

광대한 시간 앞에 인간


[애프터 양]

삶과 죽음, 현실, 다양한 가족 형태


[애프터 썬]

그 나이가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모의 삶, 부모의 그늘, 어깨, 삶의 무게


[어디 갔어, 버나뎃]

매너리즘과 우울증에 빠진 예술가를 위로하는 영화


[어떤 영웅]

비의도적인 거짓말로 인한 한 인간의 흥망성쇠


[어파이어]

젊음의 생동, 카르페디엠을 젊음과 엮어 보여줌. 멋진 여름을 보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책 보다 어리석어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보지 못해요. 늘 자기 생각에 빠져 있잖아요.


[언더그라운드]

부산 철도 노동자들의 삶. 온갖 소리의 향연, 고독한 노동자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묻어둔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중 우주,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의 대립.


[에어]

운동화 나이키 에어 조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


[엘리멘탈]

한국적 요소, mbti, 물과 불의 대립, 가족과 인종을 은유, 물과 불이 서로를 죽일까?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까?


[엘비스]

뻔한 공식의. 전기 영화, but 엘비스의 매니저(악인)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것이 차별점,


[여덟 개의 산]

높은 산을 오르려는 사람과 다양한 삶을 오르려는 사람, 그 대립과 상호보완.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흘러가고 있다는 점. 함께 흘러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


[영 어덜트]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이의 슬픔


[올리버 색스 그의 생애]

30년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의사의 다큐멘터리. 원제 어웨이크닝, 사랑의 기적으로 영화화


[우리 집]

집과 가족에 대한 원초적 기억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험에 관한 이야기, 환경설정, 기회가 왔을 때 떠나라.


[이니셰린의 밴시]

친구의 의미. 독립적 우정(친구보다 내가 중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과 신중한 우정(친구는 몹시 중요한 존재,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함)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기우는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사이드 아웃]

자연스럽게 슬퍼지는 슬픔과 에너지가 필요한 기쁨. 우리는 어디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가.


[자산어보]

흑백이지만 빛나는 영화. 음식이 그렇고, 정약전의 삶이 그랬다.


[작은 빛]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의지가 담긴 행위


[작은 아씨들]

고뇌하는 개인에게 보내는 따듯하고 위대한 지지의 마음


[종착역]

친구를 대하는 따듯한 태도


[지니어스]

편집자와 작가의 우정, 지니어스의 또 다른 의미(천재 말고 수호신이라는 뜻도 있다) 열정의 화신이 천재인가, 냉철하고 규칙적인 사람이 천재인가. 두 인물의 대립을 통해 천재에 대해 묻는다.


[차일드 인 타임]

딸의 실종뒤 부부가 겪는 상실감과 회복(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떠오른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불행한 찬실, 좌절하는 찬실, 복이 없는 찬실, 하지만 끝내는 웃고야 만다. 생에 고난이 닥쳐올 때 우리는 오히려 낯선 이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카조니어]

이상한 가족이 삶을 대하는 황당무계한 방식. 그 안의 슬픔과 아이러니


[컨택트]

결과를 알면서도 그 길을 가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 왜 살아야 하는가.)


[컴온 컴온]

대화에 관한 영화,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평범한 일은 어떻게 특별한 일이 되는가.


[코다]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청인 자녀가 가족과 자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삶, 주인공 루비에게 가족은 굴레이며 휴식처.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영화. 목소리란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다르듯 청인의 언어와 농인의 언어도 다르다. (책 406p)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가족이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프다. 자신이 감정을 표출하면서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책 406p)


[클로즈]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남자 여자 아이가 성장하며 외부의 시선에 변해가는 과정. 타인의 죽음을 통해 성장하는 개인을 개인이라기보다 꽃이나 나무처럼 군집을 이루는 생명체에 비유. 기억하고 기록하며 한 인간의 소멸 뒤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마음이 다음 세대로 끝없이 이어질 것.


[탑건: 매버릭]

무모하다 싶은 일에 도전하는 이들, 편한 길이 있는데 돌아가는 이들, 편법이 있는데도 정도를 걷는 이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을 때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한다. 톰 크루즈가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톰 크루즈를 보며 대역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 이야기꾼으로써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내놓는 자서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떠오른다)


[패터슨]

반복되는 일상 속 차이 찾아내기. 권태를 기쁨으로 보기.


[퍼스트 카우]

공정이란 무엇인가. 장발장이 떠오른다. 착한 사람들이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법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인가. 두 구의 해골로 시작되는 감독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야기.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인가.


[페어웰]

작별 인사에 관한 이야기. 암에 걸린 할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할머니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


[페인 앤 글로리]

신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우울증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 고통과 창작의 연관성. 결국 희망을 그리는 이야기.


[포드 v 페라리]

양자택일만이 답일까. 양자로 대비되는 이분법적 선택을 앞에 둔 우리는 무엇에 더 마음이 끌리는가.


[프리 가이]

어딘가에서 많이 본듯한 장면들이 많지만 그래서 그만큼 떠올릴 거리가 많은 영화. 타임 루프와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소스코드, 어바웃 타임, 트루먼 쇼, 엣지 오브 투모로우, 사랑은 블랙홀, 데드풀, 주먹왕 랄프, 레디 플레이어 원이 떠오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가난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


[피그]

진짜에 대한 이야기. 허울뿐인 가짜로 삶을 치장하지 말라. 허울에 허송세월하다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것에 관하여. (어떤 곳에 마음을 쏟으면 다른 쪽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480p)


[피노키오 -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피노키오.]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폭력의 세계 속에서 예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예술과 삶, 무엇이 먼저인가. 통합될 수 있는 것인가. 통합해야 하는 것인가.


[헤어질 결심]

다채로운 은유로 바치는 사랑 찬가


[9명의 번역가]

자조하지 마라, 변명하지 마라, 주연과 조연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3천 년의 기다림]

스토리텔링의 힘, 이야기는 결국 사랑이다. 사랑을 전파하고 싶은 사람,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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