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프롬 어스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인간 인식의 한계

by 정 호

주인공 존 올드먼은 학과장 임명 직전에 역사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떠나려 한다. 그의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결정에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존의 집에 모여 조촐한 송별파티를 벌인다. 이유가 무엇이냐 채근하는 동료들의 질문을 받으며 존은 그저 역마살이 있어 그런 것이라고,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라며 대답을 회피한다. 반 고흐의 그림, 고대 시대의 활,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 등, 존의 집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심상치 않아 보이지만 어디서 난 물건이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존은 중고로 구했다거나 선물 받았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긴다. 대체 그만두는 이유가 뭐냐며 끊임없이 묻는 동료들에게 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번만큼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구석기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진다. 처음엔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던 동료들은 점차 진지하게 학문적인 대화로 존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기 시작한다. 문화인류학 교수는 구석기 후기의 인류라면 우리와 지능 차이가 크게 없을 테니 탐구심이 강한 인간이라면 방대한 지식을 습득했을 것이라 하고 생물학 교수는 간의 몸은 7년이면 완전히 재생되니 완벽한 면역력을 갖춘 인류가 환경에서 비롯되는 각종 중독을 지혜롭게 예방할 수만 있다면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존은 콜럼버스와 항해할 기회가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꺼내놓는다. 교수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양한 표정으로 존을 바라본다. 저 SF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존의 제안에 교수들은 흥미를 느끼며 눈빛을 빛내기 시작한다. 한 곳에 정착해 10년쯤 지내다가 주변인들이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챌 때쯤이면 그곳을 떠났다는 존의 말에 동료들은 그럴듯한 시작이라며 존의 말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료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고 자신이 겪어온 러 역사적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존은 자신이 원시인으로 태어나 1만 4천 년 정도의 세월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자신이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부처였으며 그 가르침에 감복해 자신 역시 부처의 가르침을 세상에 설파하였는데 세상은 그를 예수라 부르며 시인과 철학자, 이야기꾼들에 의해 심플했던 자신의 행적에 살이 붙어 기독교라는 종교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존의 이야기를 듣던 동료 교수들은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화를 내기 시작한다. 료들의 분노에 당혹과 체념을 느낀 존은 그저 다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었다며 동료들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쓴다.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는 존의 변명에 누군가는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누군가는 안도하며 누군가는 다시 따스한 태도로 존을 대한다. 이미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는 듯 존은 어차피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통감할 뿐이다. 오직 을 짝사랑하며 그의 조교로 10년간 일해온 샌디만이 끝까지 남아 존의 이야기를 믿어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논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 자신의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인간 힘의 원천은 역시 사랑이 유일하다.


오래전 꾸벅꾸벅 졸면서도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한번 봤다. 스토리를 대략 알고 있어서 처음 봤을 때만큼 충격적이진 않았으나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의 본성이 자기 인식을 벗어나는 앎을 마주하게 될 때 얼마나 강력하게 그것을 부정하는지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렇게 인간은 앎의 기회 앞에서도 자신이 그간 살아온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 경직된 채 진실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