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5 베이스 - 눅진한 짝사랑

- 붙잡히지 않는 아날로그

by 향기가 주는 기쁨

나는 조금, 옛사람이다.

누군가의 기준에선 구식이라 불릴지 몰라도
펜과 종이 앞에서는 유독 고집스러워진다.

그 흔한 달력 앱조차 손에 익지 않고,
계획은 손끝으로 써야만
마음 어딘가에 닿는다.


기억이 아니라, 감각으로 새기는 방식.

패드와 스마트펜도 있다.
그러나 결국 손이 가는 건
팔랑이는 종이,
그 위를 번져가는 잉크의 향.
무언가를 배웠다고 느끼는 순간은
항상 그 잉크의 퍼짐 속에 숨어 있다.


오디오북으로 귀를 채우다가도
결국은 종이책을 펼쳐야
비로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활자보다, 종이의 무게가
생각을 붙잡는다.

그게 나다.


완전히 자동화된 세상 한가운데서
고요히 아날로그를 좇는 사람.
효율보다 손맛을, 속도보다 여운을 좇는 사람.

종이의 눅진한 냄새,
펜촉이 사각거리는 소리
그 익숙한 울림만이
내 안의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한다.


그러나 그 감성은
늘 너무 쉽게 멀어진다.
며칠, 마음이 분주했을 뿐인데
책은 책장 깊숙이 밀려나고,
펜과 종이는 서랍의 침묵 속에 묻혀 있다.


아날로그는 언제나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쪽이다.
붙잡지 않으면 스르르 멀어지고,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쉽게 놓친다.


그래서 짝사랑을 생각하듯
다시 손끝에 사각거림을 불러낸다.
종이 위를 흐르는 잉크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 감성의 온도를 잊지 않기 위해.
내 시간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그리워하고,
찾고, 붙잡는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조금은 느리지만 진심을 지켜가는
옛사람이고 싶다.


오늘의 향 추천 – 주제: 눅진한 짝사랑

추천 향기:

드라이 잉크(Dry Ink)

ChatGPT Image 2025년 6월 16일 오전 12_07_56.png 드라이 잉크

추천 이유:

드라이 잉크는 문득 떠오르는 기억처럼 마르고,
그 위에 손을 얹으면 다시 스며드는 감각을 닮았습니다.
펜촉 아래 천천히 번지는 묵직한 향.
다 쓰지 못한 편지처럼 조용히 남는 마음.
디지털이 닦아낸 자리에
자꾸만 다시 적어 내려가고 싶은 향입니다.
익숙한 것을 놓지 못하는,
조용하고도 끈질긴 애정의 흔적처럼.


오늘의 질문

당신은 어떤 감각을 스스로 다시 꺼내 보려 하나요?
자동화된 삶 속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나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월·수·금 아침 8시,

세 편의 이야기를 한 병의 향수처럼 당신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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