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맨 아버지의 보호자 되기

by 선홍


'부녀지간 거리 재기' 국제대회가 있다면 매달 딸 자신이 있을 정도로 아버지와 있으면 어색함을 느낀다.

며칠 전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네 번째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의 고통보다 이 폭염에 먼 부산까지 간병을 가야 하는 내 고통이 먼저 와닿았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일상이 바뀌는 걸 싫어하는 인간인 난 집 비울 때 처리해야 할 자잘한 일상들 처리도 스트레스지만 더욱 불편한 것은 아버지와 둘만 있는 시간이었다.


특별히 틀어진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서로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이 많이 달랐을 뿐.

혈액형에 알파벳 'B'가 들어가는 사람 하곤 안 맞다는 편견이 생기게 해 준 첫 번째가 아버지. (두 번째는 남편....)

'완벽꼼꼼짠돌' 스타일인 아버지와 '자유분방 기분파'였던 딸이 맞을 수가 있겠는가.


젊을 때 씨름선수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근육맨이었던 아버지는 동네에 나타나면 남자애들이 무서워 달아날 정도였다.

뭘 물어도 대답도 잘 안 하실 정도로 과묵하기까지 해서 나도 어릴 때 무서워했었고.


그랬던 아버지지만 나이 들면서 말라버려 안쓰러운 마음이 들려는 찰나, 쏟아지는 심부름을 하다가 슬슬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거실문을 1센티 (2 센티면, 4센티 열면 대체 어떤 일이 생기나요?)만 열어놔라, 생선가시는 고양이가 핥은 듯 깨끗하게 먹어야 하고, 안 쓰는 콘센트에 불이 들어와 있으면 어찌 알고 오셔서 잔소리... 아이고 아부지.



자기 관리를 잘하셔서 언제나 건강하고 바위 같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목발 짚고 허둥대는 약한 아버지를 보니 짠해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천천히 가세요, 잔돈 아끼다 더 큰돈 쓰게 된다니까, 어쩌고 하며 같이 가는데 왠지 우습기도 하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이런 시간도 오는가 하는.


병원일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색함은 사라지고, 앞으로 나 없이 일상에서 불편함을 겪으실 아버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느끼는 이 복잡다단 미묘한 감정이라니.




힘들고 불편해 피하고 싶지만 피하지 않았을 때 가치 있는 시간들이 있다.

나이 드신 부모님과의 시간, 평소 떨어져사는 가족과의 술자리 등등. 어린 시절 얘기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자신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부모님의 나이 드심, 늙음을 피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죽임, 엔딩, 끝을 연상시키기에.

그렇기에 우린 더욱 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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