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왔냐? 응.
급식 뭐 먹었어? 몰라.
비 와? 응.
비 안 와? 응.
(뭐 하자는 겨!!)
아들과의 대화는 주로 이런 식입니다. 길게 답하면 어디 잡혀가기라도 하나요?
쓸데없는 수다가 인간관계의 윤활유라고 믿는 나에게 단답형은 견디기 어려운 무엇이었어요. 남편이면 화라도 낼 텐데 아드님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나보다 어리고 사회경험 없지만 알건 다 안다고 믿는 10대 후반의 자식 놈을 상대로 진지하게 화를 낼 수도, 농담으로 둘러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가 농담도 좋아하지 않거든요. 하...
입만 열면 실없는 농담하는 어미로서 당황스럽기 짝이 없어요. 너하고만 대화가 안 된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다네요. 참 나.
신이 인생 내 맘대로 안된다는 걸 알려주려고 자식을 보냈다나요?
넌 너대로, 난 나대로, 혼자 얘기하는 심정으로 밥 먹으며 말했더니 내 말을 듣고 싶지 않다지 뭡니까. 쳇!
내 자식이 맞나 싶을 만큼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진 아들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들을 내게서 분리된 소유물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낯선 동네에 가서 낯선 음식을 먹는 '일상 속 여행'을 즐기기에 이 좋은 걸 자식에게도 주고 싶었어요. 같이 다니면서 행복했는데, 말없는 아들은 그게 싫었다는 겁니다!
내 자식이니 이런 걸 좋아하고 저런 걸 싫어하려니 생각했는데, 자랄수록 전혀 아니었습니다요.
어릴 땐 내가 주는 걸 그냥 입고 먹고 자랐기 때문에 10대가 되어서도 그럴 거란 착각.
점점 멀어지는 아이 때문에 분리불안을 겪는 건 어른인 나였던 것 같아요.
아들을 나와 다른 타인으로 보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얘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집돌이구나, 낯가림이 많아서 그런 거구나, 컴퓨터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보게 됐어요.
인정하고 나니 잔소리도 덜하게 되고, 덜 싸우게 됐어요. 상대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크더라도 상대가 불편해한다면 자제할 줄 알아야겠죠.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이가 나이 먹을수록 남의 집 아저씨처럼 볼 수 있게 되면 관계가 더욱 좋아질까요?
내게서 멀어지는 자식이 대견하고도 솔직히 섭섭합니다.
안녕... 수다스럽고 귀여웠던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