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이었다.
영화사 마케팅팀의 신입직원이 되어 정신없이 바빴을 때가.
취직하려고 부산에서 상경한 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서울 지리조차 밝지 않았다. 독립해 처음 획득한 원룸의 위치도 회사 앞이라서 정한 것뿐이었는데.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부산을 탈출(?)해 종합예술인 영화 제작하는 회사를 다니게 되어 처음엔 신이 났었지만, 하루하루 산더미 같은 중노동에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가던 시기.
부모님은 모범생으로만 생각했던 딸이 부산을 떠나 영화판이라는 '듣보잡'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걸 이해하지 못하셨다. 지금은 아카데미영화제와 깐느영화제를 수놓는 한국영화지만 20년 전만 해도 대단한 무엇이 아니었다.
주관대로 하고 싶은 일을 정한 나는 결혼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MZ세대처럼 20대의 난 시댁이 어쩌고 하는 결혼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리라,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처럼 '계약결혼'정돈할 수 있겠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하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나 한 몸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친구들이 다 결혼했을 경우 혼자 남았을 때의 외로움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집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회식 술자리를 가진 후 밤 12시가 다되어 집에 도착했다.
좋아 보이기만 하던 원룸촌이 알고 보니 강남 술집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가요촌'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시점.
그때는 현관문 아래 부분에 배달 우유를 투입할 수 있는 둥근 구멍이 뚫려있었다. 물론 뚜껑이 덮여있으나 그까짓 것. 우유구멍 속으로 내시경 같은 장비를 넣어 현관문을 열어 훔쳐가는 사건이 많다는 뉴스를 한창 보도했었다.
늦은 밤 집 앞에 도착한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취기가 싹 사라진 채 얼어붙고 말았다.
안이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수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쇠를 잘라낼 때 나는 냄새가 왜 내 집에서 나느냔 말이다.
아직도 집안에 침입자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얼어붙어버렸다.
아는 사람이라곤 회사사람들뿐인 현실에서 막내주제에 그 시간에 감히 와달리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 따윈 없었다. 거기에다 명절을 앞두고 술에 취했거나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
부모님이 그때처럼 보고 싶었던 때가 없었다.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들어 겨우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온 방바닥에 낯선 남자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남자라고 확신한 건 발 사이즈 때문이었는데.
거기다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열려 있었다.
훔쳐갈 거라곤 없는 집에서 고생했네, 심심한 위로의 말이라도 전해야하나.
놈이 내 집구석구석을 훑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며칠 후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또 우유구멍을 대충 막아놓은 곳을 긁어댔다!
같은 놈인지 다른 놈인지 모르겠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경찰에 신고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잃어버린 물건이 없으면 관여할 수 없다는 얘기뿐, 순찰을 강화해 주겠다는 하나마나한 답을 들었을 때 마음이 바뀌었던 것 같다.
결혼하는 게 좋겠다고.
뼈까지는 아니고 신경에 사무칠 만큼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결혼이란 게 운명의 짝부터 나타나야 가능한 일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 맘속에 절대 NO였던 것이 가능으로 바뀐 그 순간, 결혼에 첫 발을 디뎠던 것 같다.
결혼하면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크게 망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참으로 '인생사 새옹지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