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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Dec 18.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동지엔 팥죽>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단팥죽


우리나라는 춘하추동이 있어 계절을 알리는 '절기'가 많습니다.

더우면 에어컨 틀고, 추우면 난방 틀지, 요즘 누가 '절기'에 예민하겠습니까만은, 어른들은 챙기던 습관이 있다는 걸 시어머니를 통해 알게 됐죠.   


여름에 초, 중, 말복을 다 챙긴다는 건 말씀드렸었고,

겨울 대표주자로 '동지'가 있습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어지고, 낮이 가장 짧아지는 때죠.


현명하신 우리의 조상님들은 밤이 길어지니 어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벽사'의 기능이 있는 팥으로 죽을 해 드신 것 같습니다. 또한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설에 앞서 나이 한 살 먹는다는 통과의례 음식의 의미도 있었다고 해요.


벽사 아시죠? 주머니에 다들 팥 한 줌 정도는 넣고 다니잖아요. 길 가다가 귀신같은 거 보면 뿌려야 되잖아요. 굵은소금도 효과 좋은데, 갖고 다니기 불편하니까.


이렇게 부정한 것들 쫓아주는 팥죽 먹어줘야겠죠? 시어머니는 해마다 동지 팥죽을 끓여주셨어요. 새알심 몇 개 넣어준 죽과 시원한 동치미의 조합은 환상 그 자체입니다.


결혼 초기엔 웬 동지? 힘든 팥죽을 굳이 왜 만들어  먹어야 하나? 색깔도 보라 딩딩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놓은 것도 없을 정도로 무시했던 음식이죠.


아, 그러던 제가 시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진 걸까요. 노인정에서 미리 팥죽을 쑤어줘서 드시고 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요, 어머니, 제 팥죽은요?라고 항의할 뻔했습니다.


죽이란 게 계속 젓어야 완성되는, 꼴에 비해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인지라 함부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굳이 사서 먹기엔 제 체면도 있습니다. 힘든 팥죽을 굳이 왜 만들어먹나 생각했던 세월이 있거든요.


나이 들수록 크림빵보다 팥빵이 맛있어진다죠.

올해 팥죽을 얻어먹지 못했으니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팥죽'집에라도 가야겠습니다. 물론 팥죽과 단팥죽은 차원이 다르죠. 전자는 식사대용이 되지만 후자는 디저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동지는 12월 21일이네요.

크리스마스만 챙기지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뜨끈한 팥죽 한 그릇 먹으면서 부정한 기운을 쫓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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