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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 며느리 생일밥상>

by 선홍


그렇습니다. 시어머니 생일밥상이 아니라 며느리 생일밥상입니다.


일요일날 시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이 너무 풍성해 놀라 무슨 날인가 생각했더니 바로 제 생일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호사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마는, 애교라곤 없는 인간이라 감사의 표시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역시 어머니뿐이예용~", "와, 미슐랭이 울고 갈 맛이네요!" 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했건만 나온 말은 "잘 먹겠습니다"가 다였죠. 스스로도 답답한 '경상도 가시나'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녕 빚을 갚는다는데, '서울여시'들이 부드러운 말로 사람을 휘감아 치는 걸 볼 때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우리 같은 사람은 대신 '의리'가 있지요. 춘추전국시대 강호의 영웅도 아닌데 의리 따위 있어봤자 뭐에 쓰겠냐마는 사람 뒤통수는 안친다 이 말입니다!(안물안궁...)


잡채, 불고기, 생선전, 푹 고와 보들보들해진 맛있는 미역국을 며칠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흡입했습니다.

엄마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엄마가 되고나면 가족들 건 끓여도 제 미역국은 안 끓이게 돼요.


어릴 땐 당연히 먹는 건 줄 알았던 미역국, 얼마 만에 누군가 날 위해 끓여준 미역국을 먹는 것인지,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그걸로도 황송한데 맛있는 거나 사먹으라며 꼬깃꼬깃 접은 5만원을 주시네요. 누구한텐 보잘 것 없는 금액일 수 있겠으나 저에겐 50만원처럼 큰돈으로 느껴집니다.


결혼하니 또 한 명의 '엄마'가 생긴 셈이지요.


시시콜콜 속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정엄마와 달리 예의와 거리를 유지하는 엄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안 싸우는 관계가 됩니다.


시어머니가 남은 음식까지 낡은 반찬통에 바리바리 싸주셔서 두 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얻어온 음식을 보니 추운 겨울 며칠 동안은 먹거리 걱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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