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밥에 엄청 집착하십니다.
"밥 먹었냐?", "밥 먹고 가라", "밥부터 먹어야지", "애들 밥 많이 먹여라'등등,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나요. 밥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요?
저는 오랜 세월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 헤어질 시간까지 밥때에 맞춰야 하니 고역이었습니다.
점심때 만나기로 했으면 점심 먹고 헤어지면 되잖아요? 그런데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거죠.
저는 속으로 '밥이야 알아서 챙겨 먹으면 되지, 회사 다니느라 힘든데 얼른 집에 가서 뒹굴거리고 싶다'라는 열망에 시댁 탓을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나 잡아야지, 잔소리하다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곤 했죠.
일본 '나루세 미키오'감독의 흑백영화 중 <밥>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남편의 밥을 매일 챙기는 아내를 통해 부부간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표현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마치 그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처럼 시어머니의 밥에 대한 집착을 해석해 봤죠.
어머님의 희미한 기억 속 진술이 다인 상황이고, 본인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 자료가 많이 부족하지만요.
일단 6.25 전쟁 때 열 살쯤 되신 연배임을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엄마까지 일찍 돌아가셔서 딸로선 첫째인 상황이라 어린 나이에 오빠, 동생들 끼니 걱정을 해야 했죠.
가난한 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와 시동생, 시누이들까지 같이 살았다고 해요. 아침저녁으로 10명은 족히 될 식구들 밥을 매일 차리는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말 그대로 아침밥으로 시작해서 저녁밥으로 끝나지 않았을까요?
그 긴 세월 동안 어머님의 세포에 기억 속에 '밥'이라는 단어가 강력하게 각인됐을 겁니다.
저는 밥, 집밥, 가정식이라는 말이 여자들을 속박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요리하기 위해 재료사고, 준비하고, 만들고, 음식쓰레기 버리고, 설거지까지 거의 국토대장정급 아닙니까. 그런데 먹는 덴 십 분도 안 걸리잖아요.
인간은 왜 세끼나 먹는가 한탄스러울 지경이죠.
전업주부도 아니었고, 아니 전업주부라도 이런 비효율적인 행위를 하라고 남이 요구할 수 있을까요? 그 시간에 보고서나 한 줄 더 쓰는 게 낫죠.
그랬는데.... 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가족들 '밥'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가정식, 집밥은 내 능력으로 별로 해줄 게 없는 남편, 자식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심과 사랑임을 느꼈으니까요.
시어머니는 가족을 먹여 살린 밥을 통해 인정받고, 본인의 쓸모를 느끼셨을 겁니다.
저에겐 '인스타그램', '브런치'의 '좋아요'가 어머님에겐 '밥'으로 몰빵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과도하다고 느껴질 땐 집착하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원인을 보듬어주는 것까진 힘들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굴리려고 힘들게 구시는 거 아니잖아요. (그럴지도 모른다고요? 분위기 좋은데 이러실 겁니까?)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속에 이해와 관심, 사랑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