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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올인하지 마라

by 선홍

회사생활이란 참.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것이냐.

나름 큰 영화 제작사들에서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해왔던 경험자로서 일반 회사와 비교하긴 힘들겠지만 조직의 생리란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니.

엔터업계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있긴 하지만 없다시피 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하하.

뭣도 모르고 들어온 영화사에서 일을 못해 구박받는 막내에서 기획 PD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 때려치울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고, 때려치운 후 다른 영화사로,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도 했었고 말이야. 그 과정에서 결혼할 남자도 만났으니 결국엔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흠흠, 그냥 열린 결말 정도로 해두자.

엔터업계에서 출산은 안정된 시스템으로 보호받긴 어려운 상황이라 산후 휴가 3개월도 눈치 보면서 썼었고, 돌아온 후에도 자리가 없어질까 봐 불안해 죽어라 일했었던 것 같아. 지나고 보니 뭘 그렇게 까지 했나 싶은데.


그 자리에서 2,30년 일할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했다면 오히려 더 오래,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계약이 성사 안 되거나 성과물이 마음에 안 들 때 어떻게 해서든 바꿔보려고 아등바등했지만 내 노력만으론 안 되는 게 분명히 존재했어. 상대하는 작가나 감독과의 궁합, 상사의 스타일, 팀워크 등으로 함께 잘 굴러가야 성사되는 것이 회사일인데 나만 노력하면 된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


회사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도 요즘 드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회사 업무 시간에 딴짓하라는 것이 아니라 퇴근 후에 ‘나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엄마는 퇴근 후에도 회사 시나리오를 읽거나 참고 자료용 영화나 책을 봤어. 한마디로 일이 취미이자 휴식이 되어버린 셈. 아이까지 키우는 와중에도 자발적 착취를 하고 있었으니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좋아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


이왕 일 때문에 보는 콘텐츠라면 거기에 대한 리뷰를 남기는 블로그 같은 걸 운영했으면 어땠을까 싶어. 아무리 리뷰라도 그것들이 쌓이게 되면 나만의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도 있잖아. 그림을 배우고 싶은 꿈이 있었다면 퇴근 후 성인 대상 미술학원을 다닐 수도 있고, 수영, 춤을 배울 수도 있고... 요즘 취미 부자들을 위한 배움터가 많잖니. 각자에게 시간과 돈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나만의 세계를 키우라는 거지.


회사가 전부가 되면 아무래도 절박함 때문에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 회사를 그만뒀을 때 멘붕에 빠지고 말 거야. 그 두려움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것도 비극 아니겠니.

월급은 물론 회사가 지원해주는 식대, 자료비, 교통비 같은 부분까지 당장 끊어져 내 돈으로 다 해결해야 했을 때도 두려웠지만 그만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그게 더 큰일.

정년이 없어진 요즘 같은 시대엔 많은 사람이 백수 시기를 맞게 돼. 그 시기를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이후의 삶이 정해지겠지.

마음에 안 든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것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도구로 회사를 보면 어떨까 해. 회사에 대한 기대치를 가졌다가 맘 상하지 말고, 나를 위해 잘 쓰일 곳인가 하는 관점으로 본다면 어떤 회사든 배울 점이 많을 거야. 이후 프리랜서가 된다고 하더라도 상대해야 할 곳은 회사이므로 회사 생리를 잘 아는 것이 커뮤니케이션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


그러니 회사에 너무 기대하지도, 올인하지도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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