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엄마는 사내연애로 결혼했다.
사내연애 당시 남편이 된 사람은 팀장이었고, 난 팀원이었는데, 드라마처럼 멋진 팀장의 능력에 반하게 된 게 아니라 전부터 일 때문에 아는 사이였다. 물론 과거에도 거래처 직원 간의 만남이었을 뿐 사적인 감정은 티끌만큼도 없었지. 서로의 이상형도 아니었고.
원칙주의자에 성실한 팀장에게 난 이해나 납득이 안되면 따지기나 하는 당돌한 팀원이었어. 한창 눈만 높았던 20대의 난 아저씨 슬리퍼나 신는 노총각 팀장에겐 관심이 없었고 말이야.
그런데 정말 남녀 사이는 모르겠더라. 싸우다 정든다고 말이야, 일만 하는 깐깐한 팀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야. 천만 영화감독이던 회사 대표님이 옆에서 '뽐뿌질'을 열심히 하신 것도 원인이었지만.
다른 팀원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할 땐 더욱 서로 냉정하게 했더니 정말 옆에서도 모르더라고. 둘이 결혼하라는 대표님의 장난 같은 펌프질은 갈수록 강해져 사귀는 게 들통나지도 않았는데도 점점 우릴 사귀는 사이처럼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
처음엔 스파이짓이라도 하듯이 아슬아슬 스릴감이 넘쳐서 지겨운 회사생활에 쫄깃한 흥분감을 주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헤어진 후 회사생활을 계속하는 일은 상상조차 불편해졌어.
난 그만들 놀리시라고 정색을 해야 하나, 좁은 영화판에서 소문나면 어쩌나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연애하기가 불편해지더란 말이지. 사귀는 사이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결혼을 할지 말지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어. 결론은 너도 알 것이다.
근접거리에서 지켜본 결과 팀장이 괜찮은 남편감이란 확신이 들었지만 결혼 회의론자였던 내가 결정을 했던 건 사내연애 탓도 있었을 것이다.
사내연애의 장점은 나처럼 의심 많은 사람에겐 상대를 잘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전 회사에 다닐 때 행실이 어땠고, 스트레스받을 때 상대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술자리에서 매너는 어떤지 다 보고 듣게 된다. 그러니 알고 보니 소시오패스더라! 하고 충격받을 일은 없어.
대신 사귄다고 소문나면 일을 못해도, 승진을 못해도 사내연애 때문이라 생각될 위험성이 있다. 냉정한 판단을 해도 상대를 좋아하니 편파적으로 한 것이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말이야.
결혼 후에 한 부서에 같이 있긴 나도 불편해져 이직을 결심했어. 다행히 그때 이직할 마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계속 그 일을 하고 싶었다면 상대를 원망했을 수도 있었다.
남녀가 가까이 일하다 보면 사귈 가능성이 큰 사내연애. 요즘처럼 사람 속을 알기 힘든 시대에 몇십 년 동안 아직까지 그때의 팀장이랑 사는 걸 보면 추천해봄직하다. 대신 신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