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란 단어는 떠올리기만 해도 '열쩡, 열쩡, 열쩌-엉!' 하는 산악회' 회원 어르신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귀에 쟁쟁 울리는 듯하다. 이렇듯' 열정'이란 단어는 가만히 되뇌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 해지는 효과가 있다.
나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정 유전자'를 가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뭐하나에 꽂히면, 풍족하지도 않은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 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넓고 얕은 호기심 덕에 오래 붙들고 있긴 어려웠지만, 대신 다양한 것에 빠지는 덕에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았다.
그림 하나를 그려도 수채화만 파기보다는 마커, 색연필, 크레용, 오일파스텔 등으로 재료를 바꿔가며 노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도 깊이가 생기지 않아 답답하지만 어차피 즐거우라고 하는 취미인데, 완벽함은 추구해서 무엇해. 얕은 것이라도 나이를 먹도록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깊이란 게 생기지 않겠나 기대한다.
꽂혀서 가장 오래 한 일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글쓰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나리오 쓰기인데, 기획하고 쓴 시나리오가 투자사에 팔리고, 영화관에 걸리는 상상을 하며 오랜 시간을 버텼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비슷할 텐데, 이 바닥은 재능만 가지고는 꿈을 이루기가 어렵다.
재능 있는 자가 몸을 축내도록 글을 쓰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인맥과 천운을 만나 기회를 잡는다. 한번 기회를 잡았다고 해서 연속해서 된다는 보장도 없다. 전작이 잘되어 어쩌다 쉽게 다음 기회를 잡았다 쳐도 시나리오가 안 좋으면 단계마다 태클이 걸리고, 그걸 또 넘겼다 해도 결국 흥행 참패로 돌려받는다.
의사, 변호사는 10년 뼈를 갈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먹고살 수라도 있는데 작가는 그렇지가 않다. 일이 잘 풀려 안이해지는 순간, 나이 먹고 나태해지는 순간, '글의 신'은 뒤통수를 후려갈기곤 자기 갈길을 가버린다. 나를 잘 받아줄 더 괜찮은 그릇이 없나, 하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꿈꿀 순 있으나 앞날이 확실하지 않은 점까지 매력으로 느껴졌으니 '나쁜 남자'같은 글쓰기에 제대로 홀렸었나 보다.
무명 연기자도 그렇겠지만 무명작가도 희박한 기회를 붙잡으려 애쓰다 보니 사기꾼 같은 제작자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작가들의 갈증을 잘 알기에 내가 대기업 투자자와 막역한 사이다, 유명 배우와 친분이 있다, 이렇게 고치면 투자사가 관심을 보일 거다, 이런 게 트렌드니 고쳐야 한다 등등 온갖 감언이설로 작가의 노동을 착취한다.
꿈을 이루고 싶은 작가는 시키지 않아도 쓸 열정이 있는데 그런 펌프질까지 하면 두배, 새 배로 일을 한다.
말 그대로 '자발적 착취'가 만연한 현장이다.
작가는 열정을 가지는 게 당연하고, 상대는 무보수로 열정을 증명하길 암암리에 요구한다. 제작자가 고치라는 대로 - 물론 회의라는 형식을 거치지만 - 여러 번, 어떨 땐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까지 있지만 돈으로 보상받지 못한다. 조금만 더 고치면 될 거라는 유혹과 착각에 빠져 몇 년간 열정을 바친 작품이 무산되어 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자발적 착취'의 문제점은 죽어라고 한 후에 일이 잘 안 되면 '내 탓'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제작자가 코칭을 잘 못해서. 시장이 변덕스러워서, 코로나 같은 재난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을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고쳤어야 했는데...' 하고 자책하다 보면 우울증에 빠진다. 이런 부정적 연쇄작용이 '열정'으로 시작했다는 점이 놀랍지 않니?
나 또한 기획 pd였을 땐, 작가들에게 열정을 암암리에 요구했었다. 그 업보를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톡톡히 받은 셈이다. 열정으로 무조건 돌진할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이게 맞나?' 돌아봐야 했었다.
멈춰 서서 이 방향대로 수정하는 것이 맞나? 애초 이 작품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뭐지? 안 되는 걸 붙들고 있나? 생각해야 했다. 협업을 하게 되면 집단최면에 빠져 서로 다독이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냉정하게 돌아보고 판단하는 순간이 없으면, 소중한 시간과 돈, 청춘이 도둑맞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뜨거울수록 차가워져야 한다. 내 말 명심하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