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들기름 귀한 줄 알면 집밥, 가정식에 관심이 생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시장 가면 어쩌다 눈에 띄는 기름집 앞에 켜켜이 놓인 참기름 들기름을 봐도 '뭣에 쓰는 물건인고' 돌덩이 보듯 지나갔지요. 우리에겐 식용유가 있잖아요.
카놀라유, 해바라기씨유, 올리브유, 죄송해유.... 그만하겠습니다.
왜 필요한지 모르니 시어머니가 정기적으로 참기름 들기름을 주시면 감사하다면서도 속으론 '이를 어째!'생각했죠.
작년에 받은 기름도 그대로... 가 아니라 태초의 미끈미끈한 성질에서 누렇게 굳어가는 낯선 존재가 된 채 냉장고에서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 K-며느리로서 제사를 오래 지내면서 참기름 들기름 넣은 나물맛에 길들여진 건지 신선한 기름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이죠.
이후로 모든 음식에 참기름 들기름을 넣게 됐습니다.
식용유와는 달리 국, 반찬, 심지어 밥 지을때도 쓸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같은 존재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어요.
눈을 뜨자마자 계란프라이에, 봄동 나물에, 김치볶음밥, 버섯볶음, 미역국, 소고기뭇국, 헉헉... 쓰는 손가락이 아파올 지경입니다.
초보일 땐 여기엔 참기름, 저 음식엔 들기름 구분하느라 머리 아팠지만 억지로 구분할 필요 없이 맘 가는 대로 하면 되더라고요.
따지려 들면 한도 끝도 없으니 요리하기 싫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좀만 있으면 할머니들처럼 머리카락, 얼굴에다 바르고, 건강을 위해 한 스푼씩 마실 지도 모르겠네요!
참기름 들기름 덕분인지 꾸덕한 크림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가뭄 든 땅처럼 갈라지던 건조한 피부에 살짝 윤기가 돕니다.
국산 기름이면 최고겠지만 아니면 어때요.
참기름 들기름을 쓰려면 집밥을 해야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햄, 라면을 주식으로 삼으면 참기름 들기름 먹을 일이 없더라고요.
이제는 참기름 들기름을 말끔하게 한 병씩 비웁니다. 시어머니가 안 주시면 섭섭해지기까지 하는대요.
대형마트 참기름 들기름도 좋지만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시장제 기름을 사 먹어보는 게 어떨까요?
기름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으로 아로마테라피하면서요.
어느새 다음 주가 '입춘'입니다.
좀 따뜻해지면 시장나들이 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삶을 '기름'지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