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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국이 짜요, 라는 며느리

by 선홍

"애미야, 국이 짜다~"

대한민국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대표적인 잔소리로 유명한 말이죠. 괜히 며느리 트집 잡으려고 하는.


"어머니, 국이 짜요~"

며느리인 제가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말입니다. 와. 간이 배밖으로 나온 며느린 갑소, 생각하시겠죠.


결혼 초기엔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물론 시댁식구 모두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고향도 다르고, 가풍까지 너무 달라 시댁에 가면 도망치고 싶어 지더라고요.


초기엔 어르신들까지 시댁에 많이 찾아오셨기 때문에 낯가리는 'E'형인 저는 죽을 맛이었죠.

실제로 첫째는 예정된 출산일보다 훨씬 빠른 명절에 나오고 말았어요.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지는데, 명절노동까지 하려니 몸이 견디지 못한 거죠.


애교라도 있으면 장전 발사해서 꾀를 부릴 수도 있으련만, 미련곰탱이처럼 그저 참는 게 더 속 편하다고 생각한 거죠.

애교도 기술입니다.

이게 아무리 노력해 봐도 , 유통기한 두 달 지난 우유라도 마신 것처럼 속이 불편해져서 안 돼요.


참고 견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됐습니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하는 것일 뿐인데, 마치 악덕 사장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힘들어요, 제사 안 지내니까 좋네요, 에서 '어머니, 국이 짜요'까지 온 거죠.


가족이라도 가까이 보고 지내야 정이 쌓이는 법인지, 멀리 사는 친정아버지의 니즈는 잘 못 맞추지만 시어머니의 취향은 맞추는 관계가 됐습니다.


시어머니가 최근에 손을 다치시는 바람에 음식을 못하셔서 양념게장을 사 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김치를 맛있게 볶아놓으시고, 김이라도 더 잘라서 내놓으시네요.

밥 밖에 없을 줄 알았던 밥상이 의외로 풍성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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