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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고스톱호구가 된 며느리>

by 선홍


시어머니가 며칠 전 손가락을 다치시는 바람에 기브스를 하고 말았습니다.

팔십이 넘었으니 쉽게 넘어질 나이라 조심스럽건만 길을 가다가 누가 버린 예쁜 탁자를 보는 순간, 홀린듯이 다가갔다고 하셨어요.


자신이 쓰려는게 아니라 다른 친척 주고 싶은 마음에 주우려다 넘어지고 마셨다는데.

항상 어머니부터 챙기시라고 말씀드리지만 가족 생각을 하는 분이라 바뀌지 않으셨고, 그 대가로 두 달 기브스처방을 받으셨습니다.


나이드신 부모님을 둔 자녀들은 알 거예요. 부모님이 아프신 순간부터 일상이 바뀌기 시작, 돌봐드리러 자주 가야합니다. 자식들 힘들어지는 걸 알기에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하시지만 그게 노력으로 되나요.


고로 이번 설날에는 어머님의 음식이 아니라 감사하게도 형님들이 준비해온 떡,만두와 갈비로 명절상을 차렸습니다.


제사가 없어졌지만 좁은 주방에서 15명은 되는 식구들의 세 끼를 차리는 일은 도가니 나갈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저같은 성격의 며느리에겐 기가 쑥쑥 빨려나가는 느낌이 들죠.

손도 까딱하지 않는 아주버니들을 보면 내 남편도 아닌데 속에서 천불이 나고요.


명절 스트레스를 견디려고 그랬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며느리들이 참전하는 고스톱판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살면서 처음해보는데다 숫자감각이 없어 그런지 어느순간 형님들의 '호구'가 돼있더라고요.

하기 싫다고 하면 형님들이 살살 꼬드게 꼭 참전하게 만들죠.


점당 100원이니 처음엔 300원,400원 잃다가 누군가가 '고!'를 세번 외치는 판이 되는 순간 피해액은 3000원,4000원으로 커지고 맙니다!

이게 생각보다 아주 위험할 수 있어요. 순식간에 전재산 만원을 잃고 소위 '개털'이 되어 옆에서 사과나 깎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연습들을 하고 오는지 고스톱 패를 던지면 '촥촥' 찰지게 붙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저는 그것도 못하지만 촥촥 소리가 날 때마다 명절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평소에 소원하던 부부들도 그때는 갑자기 한편이 되더니 서로 훈수두기 시작하죠. 맥주 한잔씩 곁들이면 '타짜'처럼 쪼는 기분도 납니다.


허리가 아픈 저는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지만 쉽게 놔주지 않죠. 없으면 안되는 소중한 호구니까요.


나이 꽤나 잡순 분들과 100원, 200원 따지며 놀다 보면 길게만 느껴지던 명절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솔직히 빨리 귀가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전쟁에 참전을 하던 안 하던 오늘 같은 날엔 가족의 화합을 위해 옆을 지킵니다.

그렇게 올해도 무사히 설을 넘깁니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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