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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을 찾으셨나요?

일요산책

by 선홍


오늘도 '일요산책'을 떠납니다.

혼자 목표 없이 발가는 대로 기웃기웃 걷다가 사진 찍고, 커피 마시고. 최대한 한량스럽게요.


산책의 좋은 점은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붙잡고 늘어질 수 있는 거죠. 비록 집중력이 짧아져 오래가진 못하지만.


오늘따라 요즘 읽고 있는 기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 속 문구가 자꾸 생각납니다.


- 야심은 불안이고 천직은 기대입니다.

야심은 두려움이고 천직은 기쁨입니다.

야심은 계산하고 실패합니다.

성공은 야심의 모든 실패 중 가장 화려한 것입니다.

천직은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것이며, 모든 것이 그에게 주어집니다.


걷다가 카페


천직이 대체 뭘까요.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의 구분도 어려운데 천직은 어떻게 찾나요.

천직은 어학사전에 '타고난 직업'이라고 되어 있고, 영어로는 'calling', 즉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는 대요.


<일과 인생> 속 문구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각을 느껴본 적은 있는 것 같네요.


학창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쓴 글이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친구들이 재밌다고 했을 때 기뻤습니다.

그렇다고 그걸로 직업을 삼는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죠. 실리를 중요시하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예술 비슷한 일만 해도 거지꼴 못 면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니까요.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지만 누구나 그런 칭찬은 듣고 산다고 생각했을 뿐, 생계를 해결해 줄 직업을 찾아다녔죠. 단 하나 중요시 했던 점은 재밌으면 좋겠다,라는 것뿐.

그래서 영화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파트를 거쳐 마침내 글 쓰는 관련 직업으로 정착하자고 결심하게 됐을 때 당연히 시나리오 작가를 하기로 했죠.

인간을 일컬을 때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등 다양한 인종이 있고, 기질이 천차만별인데도 영화판이니까 시나리오작가, 이런 식의 선택이었죠.


솔직히 말할게요.

제가 쓴 시나리오로 억대 계약금을 받고, 세계적인 감독이 같이 일하자고 제의하고, 주변 동료들이 '와, 네 시나리오 죽인다!'라고 감탄하며 질투 어린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상상... 했습니다, 예. 여기까지 와서 뭘 숨깁니까.


너무 별 재능이 아니기에 이걸로 돈 벌 생각은 전혀 안 했던 글쓰기는 반응이 빠른데 비해 어찌 된 일인지 성공하고 싶어 건절한 마음과 노력으로 쓴 시나리오는 영화화될 문턱을 못 넘는 거죠.

그러는 사이 십 년은 우습게 흘러버렸습니다.


나 자신을 욕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내 돈, 내 시간을 투자해 치열하게 노력했건만 이다지도 냉정하다니! 신이 사이코패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쯤 되니 '야심은 계산하고 실패한다, 천직은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다'는 기시미 이치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잡히지 않나요? 잘 모르겠다 고요? 에잉~


저처럼 몸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배우지 말고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길 바라요. 여러분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누가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평생 은인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가 아니라 속으론 무시했을 것 같네요.

성공에 대한 야심으로 이글거리는 시기였는데 누구 말이 귀에 들렸을까요.


어떻게 천직을 찾을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신다면... 알아서들 하셔야죠. 조언이랍시고 말해봤자 여러분도 제 말 안 들을 거잖아요.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조바심을 갖지 말란 것' 뿐입니다.

이 나이에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구분조차 헷갈립니다.


그냥 당장은 먹고살 일 하면서 천직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천직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 거리가 멀 수 있으니 내 마음속 부정적 목소리, 가족과 사회의 편견과도 부딪힐 수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긴 마라톤입니다.

저는 이미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늦었다고 생각안할랍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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