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면 기획 PD를 오래 한 것이 문제였다. 만일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면 말이다.
뜬금없이 왜 직업을 문제 삼느냐 하겠지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데.
영화판에서 일하는 작가와 PD는 외부에서 볼 땐 비슷한 직업 같겠지만 실은 극과 극으로 다르다.
기획 PD는 작가와 같이 작품을 만들긴 하지만 작가의 자식이 일단 있어야 축구선수를 만들지 발레리나로 키울지 의논이 가능하다. 때론 PD가 씨를 줄수도 있지만 잉태해야 할 사람은 결국 작가.
PD는 아이 잘 크라고 산양우유, 비싼 분유 갖다 줄 수 있고, 거리 두고 아이 재능을 지켜본다. 작가는 자기 자식에게 빠져버려 객관적이지 못할 때가 많으므로.
아이를 잘 키우려는 부모들처럼 서로 단합하기도 하지만 종종 결렬하게 언쟁을 벌인다.
극단적인 차이점을 말하자면 작가의 눈은 내면을 향해있고, PD는 외부로 향해있다.
수십 번은 고쳐야 하는 시나리오 작업에서 PD의 객관적 조언이 중요해진다. 상업영화의 PD라면 작품을 어떻게 해서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자식으로 만들고 싶은데, 작가가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너무 쉽게 따라오는 주관 없는 작가라면 더욱 문제다.
귀 얇은 엄마를 둔 자식이 성공할 수 있겠나.
그렇게 PD로 일하다 시나리오를 썼더니 외부의 평가에 예민해졌다.
이 시나리오를 어떤 방향으로 고칠지, 고치라는 조언을 어디까지 들을지, 언제까지 고칠지 등의 중요한 문제를 내 생각보다 돈 준 사람의 리뷰에 지나치게 신경 썼다.
돈을 받았으면 당연히 그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착각했는데.
애초에 내 작품이 마음에 드니까 돈을 준 것인데, 내가 낳은 아이가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 두 사람의 목표이지, 돈 준 사람의 말 잘 듣는 실패한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다.
당연한 소리 같겠지만 오랜 시간 작품을 써야 하기에 갑과 을의 관계라는 정치적 이해, 투자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등으로 작가의 마음이, 줏대가 어지럽혀진다.
그래서 성질 더러운 사람이 글 잘 쓴다는 편견이 만들어진 걸까.
그렇다고 작가가 귀를 닫으면 큰일이고,
시나리오를 쓰겠다면 고치라는 조언을 신중히 다뤄야 한다. 이도저도 싫은 성격이라면 소설을 쓰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
작품은 누구 마음에 들어야 하나?
결국은 작가 마음에 들어야 한다.
작품은 언제 완성되나?
작가가 완성됐다고 느낄 때다.
이 당연한 진리가 흔들렸을 때 가장 개고생 하는 건 작가다.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