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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기회를 뺏기지 마라

by 선홍


저는 14년째 무명작가입니다.

그동안 무난하게 큰 실패 없이 살았는데, 마일리지 쌓은 걸로 치면 그 가게의 가장 비싼 메뉴를 개수제한 없이 먹을 정도로 실패의 기록을 쌓고 있네요.


예전에 '실패할 기회를 뺏기지 말라'는 조언을 아버지에게서 들었다는 백희성 건축가의 말을 듣고 현명하신 분이구나, 탄복했던 적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실패할 것이 뻔한 일이지만 도전했을 때 얻게 될 경험과 노하우는 그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니까요.

2,30대까진 얼마든지 실패할 일을 부러 찾아다니라고 조언하고 싶을 정도예요.

문제는 언제까지 실패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끝이 보이지 않아 힘들 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책인데요,

어린 시절에 읽은 이후 어른이 될수록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길.

애벌레가 나비가 된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애벌레는 남들이 죄다 위로 올라가는 기둥이 있길래 쫓아 오릅니다. 다른 애벌레를 막 밟으면서 가기도 하죠, 다들 그러니까.

대체 위에 뭐가 있는 거야?라고 묻지만 답을 아는 애벌레는 아무도 없어요. 좋은 게 있으니까 가겠지, 하는 식이죠.


돌아보니 놀랍게도 여기저기 애벌레 기둥이 가득합니다.


계속 오르다 지쳐 번아웃이 오고 만 애벌레는 땅으로 내려오던 중 크고 아름다운 나비를 만나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역경이 있지만 주인공 애벌레도 고치가 되는 긴 시간을 견뎌 마침내 나비가 된다는 감동적인 얘기입니다, 훌쩍.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만 저길 가면 잘살겠지, 하고 매달리는 대학입시, 승진에 목메는 시간 등등, 인생에 그런 시간들이 누구나 존재합니다.


저는 각종 허탈감을 겪은 후 뒤늦게 누에고치의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 것이죠. 이렇게 길어질지도 모른 체.

나비는커녕 고치 속에서 말라죽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행이랄까 불행이랄까 이젠 물러설 곳이 없으니 계속합니다. 재벌집 막내딸도 아니고, 먹여 살려주는 사람도 없지만 계속.

위에 뭐 별게 없더라,는 걸 느꼈으니까요. 오십의 힘입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결과에 목을 매던 시기도 지났고요, 아직 이보다 더 끌리는 일을 못 만났습니다.

글을 쓰는 건지 도를 닦는 건지 헷갈립니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깨닫고 고치에 갇히는 것보다 낫다고 긍정회로를 돌립니다. 고치속에 갇혔다가 진짜 미라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왜 이렇게 힘들지? 누가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시간 속에 있다면 당신도 '누에고치의 시간'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 시간이 우리에게 곧 오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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