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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일기를 쓰면 참 좋은 점 4가지

by 선홍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3월입니다.

어른들이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던데 겪어보니 진짜예요.


어제가 오늘 같고, 어제 뭘 했는지도 금방 안 떠올라요. 스마트폰, 노트북에 메모해서 그런가 손으로 기록하던 시절보다 기억력이 더 흐려진 것 같습니다.


SNS, 유튜브라는 시간도둑까지 가세해 내 소중한 시간을 뭉텅이로 도난하는 것 같은 느낌, 저만 느끼는 건가요?



'워낙 빠름에 집중하는 시대이다 보니 속도를 늦추려면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예술평론가 피터 클로시어는 몇몇 미술관과 갤러리를 설득하여 한 시간 동안 한 작품만을 감상하는 '1시간 1 작품'캠페인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 <킵고잉> 중



겉보기와 달리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써온 성실한(?) 인간입니다. 암요, 인내와 성실하면 저죠. 아무도 인정해주진 않지만.


짧은 일기에 자연스럽게 드로잉을 곁들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됐어요. 이젠 중독 수준이라 여행을 가도 '미도리 트래블러스 노트'는 소중한 동반자로 함께 합니다. 굴러다니는 아무 노트에다 하면 안 됩니다.


취미는 '간지'거든요.


마음에 쏘옥 드는 노트와 쏘옥 드는 펜을 마련하면 어디든 데려가고 싶어지고, 그러다 한 줄이라도 쓰게 됩니다.

한 줄이 두줄 되고, 그림도 그리게 됐다가 영수증도 붙여볼까? 점점 확장되거든요.


그렇다면 드로잉을 했을 때 뭐가 좋으냐?

이 좋은 걸 나만 하기 아까워서 알려드릴게요.


첫째, 시간을 '똑띠' 기억하게 됩니다.


손에서 모래처럼 우수수 사라지는 시간을 주먹 쥐고 움켜쥐는 느낌, 그것이죠. 어차피 삶이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가는 여행이라면 제대로 보고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사물을 똑바로 보게 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교과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시겠지만 진짜 이 말이 사실인걸요.

지치고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을 그려보세요.

젊은 사람보다 많은 얼굴과 옷의 주름이 나이테처럼 우아한 결을 만듭니다.

사진으로 찍으면 그저 낡아보아는 집 처마와 좁은 골목이 번쩍번쩍한 빌딩보다 그릴 요소가 많아 풍성해집니다.


셋째, 그러니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물건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예술가의 눈 아닌가요?


넷째, 예술도 별거 아니네, 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런 시각을 갖게 된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실제로 의욕고갈, 우울증일 때 극복하게 해 줬거든요.



'영화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노년에 스케치하는 습관을 갖게 되어 블로그에 소감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런 표현이 담겼다.

"앉아서 스케치하는 덕에 대상을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드로잉이야말로 '어떤 장소나 순간을 더 깊이 경험하는 수단'이었다고 덧붙였다...'

- <킵고잉> 중



저 혼자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네요. 경험해 본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합니다.

세상이 엄청 아름다워진다고.


펜 하나만 쥐면 기적 같은 일이 가능하니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카페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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