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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마케팅으로 날 조종하지 마세요

by 선홍


심심해서 우리나라 분야별로 국제순위가 몇 위인지 봤습니다.


정보화지수, 인터넷속도, 정치인권 등은 상위권에 있다가 갑자기 남녀성평등지수로 오면 20위쯤, 삶에 대한 만족도, 노인부양비, 청년고용률은 더욱 뒤로 밀립니다.

자살률이 탑을 찍은 것과 무관하지 않겠죠.


봄이 오는 마당에 뭔 우울한 얘기냐고요?

성취, 성과, 성공이 행복과 관련 있다고 너무 주입하는 사회 분위기가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대학입시에서 부모님이 인정할만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버티느라 소화불량,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렸어요.

한 단계 겨우 넘어가면 이번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죠.


교사가 되라는 주입식 충고를 계속 들었지만 여기서 저의 비범함(?)이 드러납니다.

완전 다른 분야를 선택해- 저조차 당황했습니다- 열심히 일했어요.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단 걸 증명하려고.


결혼할 배우자의 조건도 부모님 마음에 안 찼을 거예요.

그냥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고, 아이를 하나 낳았습니다.


애 하나 낳고 회사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 되어 피똥 쌀 지경인데, (고급지지 못한 표현 죄송합니다...)

애 하나가 더 있어야 잘 큰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키워주시고, 와닿는 바도 있어 둘째를 낳고 나니 웬걸, 셋째도 낳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받았네요.

헉소리 납니다!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자유로워질 줄 알았죠. 천만의 말씀, 노후준비는 어떻게 할 거냐는 압박이 들어옵니다.

죽을 때까지 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시스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직도 대학입시철만 되면 입시증후군이 살아나는 판에 자식들의 입시가 생사를 좌우합니다.

엄마에겐 명품백보다 자식의 명문대입학이 더 자랑스럽다나 뭐라나.

예, 저도 홧김에 자랑 좀 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하는 조언인지 충고인지에 너무 힘들었었거든요.


애가 부족한 날 만나 잘못되면 어쩌지? 엄마들의 불안과 죄책감을 건드는 말을 서슴없이들 합니다.

여길 보내야 뒤처지지 않는다, 이러면 애가 정서불안이 된다 어쩌고 저쩌고...

그냥 각자 자신들의 삶만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애들 공부 가르치는 거에 놀랐었던 기억이 나요.

거기서 한글을 떼고 학교 들어가고요, 각종 학원에서 온갖 과목들을 배우니 학교의 기능이 뭔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저만 이상하다고 느끼나요?

이래서 교사들의 인권을 마구 무시하는 지경이 된 건 아닌가요.


우리 애가 남보다 더 빨리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엄마들은 불안해집니다.

우리 사회에는 '불안 마케팅'이 아주 잘 먹히고,

그것으로 돈 버는 분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처럼 모자란 엄마도 애 키우고 회사 다니는데 아무 문제없었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남들이 다 문제라고 해도, 배우자와 의견충돌이 생겨도 끊임없이 대화해 보고 아이 말도 들어봅니다.

옆집 엄마얘기보다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어봅니다.

내 마음속으로 거부감이 들고, 아이가 진짜 싫어한다 싶으면 세상 사람 떼로 몰려와 조언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문제 있는 엄마였지만 아이들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컸습니다. 남들이 예고하던 불안한 일은 하나도 안 생겼고요.

그러니 남 따라가다가도 너무 버겁다 싶으면 내려놓읍시다.


'텔레토비'에 나오는 형님들인지 성우분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제 그마안~" 이라고요.


자신과 남에게 필요할땐 그 말을 해야합니다.

예, 압니다. 그것도 용기라는 걸.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째는 훨씬 쉬워져요.

불안에 시달려 나답지 않게 사는데 아이가 행복해질 리가 있나요.


좌충우돌 아직도 힘들게 성장 중인 반백살이

저 같은 엄마가 있을까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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