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최근 며칠간 무슨 스릴러 영화라도 찍는 기분이었다.
네 외할머니가 갑자기 복막염으로 입원을 하신 것에 깜짝 놀란 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삼사일 걸릴 거라고 예상하던 입원기간이 2주 진단을 받으면서 불안이 시작됐어.
그동안 주변에 입원한 사람이 없어서 몰랐는데, PCR 검사에 통과된 보호자 한 명만 환자 간병이 가능하고, 면회는 아예 불가하더라. 사람이 몸이 아프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기에 가족들이 면회를 오가면서 불편한 점을 봐줘야 환자도 마음이 놓일 거잖아.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간병인과 24시간 붙어 지내야 하니 얼마나 불안하겠니.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필요 이상의 노동은 하지 않으려 들 테고, 서로 스타일도 안 맞을 거잖아.
외할머니는 간병인 복이 없었던지 최악의 상대를 만났다고 해. 몸도 아프고 기력이 없는 환자에게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동의를 구하는 데다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감시라도 하듯 착 붙어 엿듣는 바람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대. 머리를 감겨달라고 하거나 이를 닦고 싶을 때 자기 일에 포함되어 있느니 마느니 따져 대서 제대로 이도 닦지 못했다고 해.
24시간 붙어서 병원에서 나가지도 못한 채 환자랑 붙어 지내야 하는 건강한 간병인 입장에선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마는 아픈 사람 상대로 언성을 높이고, 싫다는데 자꾸 말을 거는 건 문제가 있잖아.
절약 습관이 배어있는 외할머니답게 5인실에 들어간 것도 문제였어. 간병인까지 하면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간병하고 먹고 자는 데 무슨 잠이 오고 밥맛이 나겠니. 어제까지 대화 나누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도 외할머니에겐 충격이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외할머니는 입원한 후로 몸이 점점 안 좋아지더라. 서울과 양산의 먼 거리만큼이나 모녀 사이의 끈이 끊어질 듯 말 듯하는 불안감에 혼자 울었다. 종교도 없는데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하고 막무가내로 누군가에게 빌었어.
그 와중에 같은 병실에서 코로나 환자까지 나왔다는 소식에 불안은 점점 커졌고, 다행히 음성으로 판명되었지만 입원한 후로 거의 먹지 못했던 외할머니는 전화통화도 어려울 만큼 쇠약해졌어. 병원에서 다른 검사를 한 후에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심각한 병까지 발견되었을 땐 정말 어휴....
그러다가 외할머니의 핸드폰이 뚝 꺼져버렸지. 매일 통화라도 해야 안심이 됐는데, 그마저도 안정을 취하기 위해 못하게 되자 전염병에 걸려 어딘가로 격리된 사람들이 수상한 조직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무서운 상상이 들더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그래, 인명은 하늘에 달렸다, 죽기 아니면 살기지하고 탁 놓아버리는, 내가 안달복달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잖아, 하고 차라리 편해졌어.
그리고... 고맙게도 외할머니가 퇴원한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쇠약해진 엄마를 만나 간병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는데, 무슨 드라마처럼 역에 내리자마자 코로나 양성이 떴다는 네 문자를 받았잖아. 와... 이건 또 무슨 신의 장난이지?
환자 간병을 해야 하는 난 패닉에 빠져 가까운 신속항원 검사가 가능한 이비인후과를 정신없이 찾았어. 무거운 짐을 끌고 낯선 동네에 내린 후 땀을 찔찔 흘리며 찾아갔더니 병원 점심시간에 걸려버린 거지. 이럴 때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안 되는데, 여기저기 전화해서 알아보는 동안 양성이 나오면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더라.
우리 엄마 어떡하나, 눈물을 찔끔거리며 검사를 받고 나온 결과가 ‘음성’이었을 땐 정말 ‘살았다...’라는 생각뿐이었어. 나도 살고, 엄마도 살고.
퇴원하자마자 만난 외할머니는 가죽과 뼈만 남은 데다 딸도 못 알아볼 만큼 의식이 혼미했지만 열심히 간병한 덕에 상태가 많이 호전되셨어.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 중에 하나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엔 간병인을 구하는 수요가 많아 선택의 여지도 없고, 죽어서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며 화장장에 예약도 너무 많아 며칠 기다려야 한다더라. 전염병이 돌 땐 병원에 입원하지도 말고, 죽지도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겠니.
겪어보고 느낀 점은 이런 시국에 입원을 하게 되면 무리를 하더라도 5인실보다 2인실에서 환자가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겠더라.
코로나가 2급 감염병으로 하향된다는 뉴스를 방금 들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을 만나는 것이고, 훗날 또 다른 전염병이 돌았을 때 이런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 적어본다. 중환자들의 가족들에겐 격리 해제도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고.
아프지 말자.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뼛속 깊이 와닿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