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하고 후회
결혼은 미친 짓이 맞다, 살아본 결과.
나를 데리고 사는 일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삶이라니, 어휴.
개인주의자가 되어 프랑스 같은 유럽에서 혼자 자유롭게 사는 삶을 꿈꿨는데, 어쩌다가 보수적인 가족중심주의 시댁을 만나게 된 걸까. 역시 극과 극은 통하는 거였나.
둘만 있는 신혼시절부터 참 많이도 싸웠다. 같이 부대끼는 사람들끼리는 그럴싸한 일 보단 하찮고 어이없는 일로 진지하게 다투게 된다.
실제로 치약을 위에서 짜느냐, 밑에서부터 짜느냐는 문제로 이혼하는 부부들도 있잖니. 사실 치약은 갈등을 드러내는 매개체일 뿐, 쌓여있던 문제가 그것으로 터져버린 것이겠지.
상대는 바로바로 설거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모아서 한꺼번에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한쪽은 물건에 집착해 쌓아 두는 성향이지만 다른 쪽은 잘 버리는 성향이라면.
버릇이나 취향은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 서로 자기 스타일이 맞다 우기면서 상대를 비난하면 그야말로 ‘노답’의 상황이 돼. 매일 붙어사는 사람들끼리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연애시절에는 봐주던 것도 결혼하면 얄짤 없다.
나이 들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 변하지 않을 무엇에 대고 자꾸 비난을 하면 갈등의 도돌이표만 만나게 돼. 스스로에게 너부터 바꿀 수 있겠냐고 자문해봐. 바꾸는데 드는 불편함과 노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게 돼서 상대에게 쉽게 요구하기가 어렵더라.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처럼 심한 것은 고쳐야 하겠지만 트러블을 자꾸 일으키는 상대의 습관과 버릇 같은 문제는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이 좋다.
혼자 사는 것이 예측 가능한 한 가지 컬러의 세계라면 결혼생활은 두 가지 수채화 물감을 섞었을 때 배합에 따라 어떤 색이 나올지 모를 세계 같다. 둘만 있어도 그런데 시댁, 친정이 끼고, 자식 문제까지 섞이면 어떤 색이 나올지 도대체가 예상이 안 돼. 갈등은 두 배, 세 배로 막 불어나고.
예측이 안 되니 불안하고 불편하게만 생각되던 결혼생활이 점차 어떤 색이 나올지 기대되는 경지(?)가 되더라. 기대라고 해서 막 좋아서 흥분하는 그런 게 아니라 ‘흠, 이번엔 어떤 색이 나올지 한번 지켜볼까?’하는 무덤덤한 기대에 가깝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 성숙한 경지에 이른 것처럼 느껴진다면 커- 다란 착각이다. 어제도 부부싸움을 했던 것 같은데, 쩝.
참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 처음에는 좀 참았다. 그런데 꽁한 마음이 사라지긴커녕, 눈덩이처럼 마구 불어나 상대의 모든 행동이 꼴 보기 싫어지는 거야. 연애할 때는 보기 싫으면 ‘BYE~'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택한 전략이 ‘피하지 않고 말하기’ 였어.
내가 원래 이렇게 치사한 인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남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정도의 사소한 일로 삐지고 화나는 자신에게 먼저 당황했지.
‘남의 편이 남편’이라더니 무조건 내 편부터 들어야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에 섭섭했고, 터프한 경상도식 말투에 기분 나쁘게 반응하는 것도 서운했다. 쪼잔한 나 자신에게 당황하고, 상대에게 섭섭한 시간들이 계속됐어. 처음에는 우아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욱해져서 언성을 높이고, 눈물까지 치솟더라.
두통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지만 대화인지 싸움인지 모를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어. 쇼윈도 부부가 되는 지름길은 대화 단절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같이 산지 20여 년이 된 지금, 그런 시간들 덕분인지 많이 편해졌어. 시작하면 골치 아픈 걸 아니까 미리 조심하는 센스 같은 것도 생겼겠지. 울퉁불퉁한 동그라미 두 개가 만나 치고받으면서 깎이다가 맞게 꽉 끼워지는 과정이 결혼 같아. 도를 닦으려면 산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해라. 하하.
이왕이면 지구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떠나고 싶기에 나만 사는 세상뿐 아니라 같이 사는 삶도 살아보고 싶었어. 너도 그렇다면 한번 해보던지... 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