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초긍정마인드의 씩씩한 내가 널 낳은 후에 산후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을.
그런 단어를 들어만 봤지 주변에서 겪어봤다거나 조심하라고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아이 낳고 나면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여겼다. 무엇보다 애 낳는 일이 나만 겪는 특별한 일도 아닌데, 내 엄마도, 시어머니도, 동료들도 척척 해내니 유별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출산해본 적이 없는 남자들은 어차피 이해 못 하고, 겪어본 여자 어른들은 별스럽게 군다고 여길 것 같았다.
뒤돌아보니 티를 내야 했었다, 유별나게 떠들어대야 했었다.
나 힘들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2주 있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출산하자마자 이별할 줄 알았던 부른 배는 주인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했다. 몸이 아물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 아이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모성애'는 분명 생명을 출산, 대를 이어가게 하기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이고 환상이었다. 물론 널 처음 보자마자 반한 건 사실이었다. 넌 한 손에 움켜쥘 수 있을 만큼 너무나 작고 따듯했다. 힘을 주어 안다가 부서뜨릴까 봐 무서울 지경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라는 특화된 존재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작고 예쁘고 가냘픈 생명체를 봤을 때 느끼는 보편적인 것에 가까웠던 것이다
너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모성애도 같이 자랐지, 무턱대고 생기는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쁜 엄마라서 그런가 자책하기도 했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니?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엄마가 되니 모든 것이 내 탓 같고, 내가 모자란 인간 같았다. 나하나 책임지는 것도 버거운 인간이 이렇게 작고 무력한 생명체를 맡아서 어쩌겠단 말인가.
널 안자마자 맡은 첫 번째 임무가 당장 기저귀부터 가는 것이었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간호사에게 받은 그 물건을 아기에게 어떻게 채워야 하는 건지 몰라서. 모유도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마사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처음 알았다. 신생아인 넌 툭하면 울고, 아프고, 그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거렸다. 내가 뭘 몰라서 네가 죽을까 봐 너무너무 두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모성애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공포와 두려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라면 몰라도.
남편이 회사로 가고 나면 늦은 밤 귀가하기 전까지 너와 오롯이 둘이서만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때 난 자주 베란다로 나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었어.
나도 매일 출근했었는데, 지겹기만 하던 회사 가고 싶다, 저 사람들은, 저 많은 차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염없이 했더랬어. 옆에서 보면 되게 이상했겠지?
신생아 때는 엄마가 잠도 못 자고 자주 모유를 줘야 해서 수면부족인 데다 감금생활을 해야 했기에 정신이 점점 피폐해졌던 것 같아. 활동적인 스타일이라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으면 우울해지면서도 외부의 나쁜 균이라도 묻어올까 봐 전혀 외출을 안 했거든. 아, 음식쓰레기 버리러 갈 때만 잠깐.
그러다 뭔가 폭발해버린 것처럼 낮잠 자는 널 두고 송금할 일이 생겨 동네 은행에 가버렸다. 물론 긴 잠을 자는 시간대를 택해 정신없이 뛰어갔다 오긴 했지만 위험할 수도 있었다. 고작 몇십 분의 외출이긴 했지만 바깥공기는 너무나 신선하고 달았다. 잃어버린 생기가 돌아오는 것 같았고.
헉헉대며 귀가하는데 네 울음소리가 들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소라면 절대 깨지 않을 시간, 엄마가 잠시 사라진 걸 어떻게 귀신같이 알곤 깨어나 목이 터져라 울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널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혼자 둬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것 말고도 초보 엄마라 흘린 눈물은 한강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다. 회사로 복귀하려면 모유에서 분유로 바꿔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 네가 데모라도 하듯이 한사코 분유를 거부하는 거야. 어른들이 굶기면 먹을 거라고 조언하셔서 굶기는 게 미안해서 울고, 억지로 분유를 먹은 후 알레르기로 온 얼굴이 부풀어올라 또 안고 눈물을 쏟았었다. 흘린 눈물만큼 모성애가 자랐고, 넌 차츰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내 자식이 되어갔다.
힘들다고 주변에 말할 걸, 그땐 왜 그랬을까. 친정이 지방이라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고, 혼자 해결하는 게 익숙해서 도움을 청할 줄 몰랐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하지만 말해야 했다. 도와달라고.
사람마다 성격도 예민도도 다른만큼 산후 우울증도 각양각색일 터. 남들은 안 그러던데, 비교하면서 참지 말고 힘들면 인정하고 용기 내서 말해야 한다. 어디 산후 우울증에만 해당되는 얘기겠니.
초능력처럼 엄마의 부재를 인지하던 능력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어느새 넌 엄마가 귀찮은 나이가 돼버렸다. 흥, 나도 이제 홀가분하거든?
다만 나를 포함한 모든 엄마들이 가슴으로, 눈물로 키웠다는 사실만은 알아주길 바래. 사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