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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밥으로 표현해라

by 선홍

당연하게도 매일 밥상을 차린다.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이 있고, 남편이 있으므로.

'먹여 살린다'는 말이 요즘처럼 의미가 와닿는 적이 없어. 하루 세끼 자연스럽게 배가 고프고, 그때마다 부지런히 뭔가를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허나 나이 드신 엄마는 아프니 입맛이 먼저 떨어져 버리고, 먹지 않으니 뇌를 비롯한 온몸에 영양이 돌지 않아 기억력도 떨어지면서 거동도 못하게 된다. 몇 숟갈만 먹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밥'하면 떠오르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범인으로 의심되는 박해일을 맞닥뜨렸을 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로 그에 대한 연민인지 혐오인지 모를 복합적인 감정을 잘 전달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서는 주인공 홍설이 다중인격자로 의심되는 선배 유정이 갑자기 친근하게 자꾸 "밥 먹을래?"라고 물어와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른다. 저 인간 밥에 환장했나? 싫어하던 나한테 갑자기 왜? 라며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 의심하면서.


'응답하라 1988'에선 엄마라면 공감되는 대사가 나오는데, 류준열의 엄마 역인 라미란이 자식이 한밤에 밥 달라고 하면 수육이든 뭐든 해주고 싶은 맘이 드는데, 남편이 라면이라도 끓여달라치면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자식이 밥 먹는 걸 보면 논에 물 대는 농부의 심정이 된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더니. 자식들이 내가 해주는 밥을 먹어 키 크고, 살이 오르는 모습을 보는 건 큰 행복이더라. 반면 남편이 먹는 건 똥 밖에 더 되겠냐는 생각이... 쿨럭.


일본의 '나루세 미키오'라는 거장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밥'이라는 영화가 있어. 그냥 제목에 이끌려 예술영화 상영관에서 본 적이 있다. 매일 밥 달라는 남편에게 매일 밥 지어주는 아내가 지치고 질투하다 열받고, 아니 열받다가 질투했나? 암튼 그러다 가출을 했는데,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고 밥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별 사건 없는 이야기였어. 그런데 밥하는 장면이 왜 그리 눈에 들어오던지.

오래된 흑백영화라 가마솥에 한복 입고 밥 짓는 그런 옛날 느낌이었지만 그 행위가 참 숭고해 보였달까. 누군가를 먹여 살릴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는 수고는 지루하면서도 참 힘들다. 밥 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희생'아니냐. 밥상 차리는 게 힘들어 이젠 남이 해주는 밥이라면 무조건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성이 '같이 밥 먹을래?'라고 묻는 건'너한테 관심 있다'는 말과 동의어 같다. 너와 밥 먹는 즐거움을 같이 누리고 싶어,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너에 대해 알고 싶어, 라는 다정한 뜻 아닌가. 그러니 싫어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건 완전 고역이다.


엄마가 자식에게 밥 먹을래?라고 묻는 건 아프지 말고 건강하길, 너의 생명에 관심 있다는 뜻이고. 나의 엄마는 아프게 되면서 더 이상 나에게 밥을 해주지 못하게 됐다. 엄마의 집밥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니... 엄마의 밥을 먹지 못하게 된 자식의 마음은 참으로 애달프다.


다행히 아직 시어머니는 주말마다 찾아뵈면 밥상을 차려주신다. 남이 해주는 밥이라면 김치만 있어도 맛있는데, 음식 솜씨 좋은 시어머니의 집밥이라니, 꿀맛이 따로 없다. 시어머니마저 안 계시면 내게 집밥을 해줄 사람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외로워지고 가슴이 뻐근해진다.


엄마들이 나이 들면 엄마의 집밥은 자식이 해 드려야 한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오랜시간 밥을 하다가 기력이 다 빠질 나이가 되어서야 집밥을 얻어먹는다.

밥을 짓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다. 밥은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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