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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싸워야 잘산다

by 선홍


싸우지 않는 부부가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싸워본 적이 없는 부부가 있다면 쇼윈도 부부일 가능성이 크다.

둘만 알콩달콩 연애할 때도 상대의 태도, 습관, 주변 사람들 때문에 싸울 일이 많은데,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고, 가정경제까지 운영하게 되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다 자식이 짜잔, 등장하면 시부모님, 배우자와 교육관이 안 맞아서 또 난리.


'연애의 참견'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커플들이 처음엔 콩깍지가 씌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러다 상대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싸우다가 화해하지만 문제는 반복된다.

고쳐 쓸지 도망갈지 고민하는 사연자에게 빨리 도망가는 것이 답이라는 리뷰들이 달린다.

사람이 잘 안 바뀐다는 것을 이제는 다들 알게 된 것이다. 애인 사이도 저러니 다들 나처럼 지지고 볶고 사는구나 싶어 묘하게 안도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의 결혼은 가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도 많다. 요즘 결혼하려면 자산가치가 있는 아파트에서 시작하고 싶어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기대,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 등등을 무시한 채 사랑만으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같이 살겠다는데 뭐가 이리 복잡한 건지...


연애도 1년을 잘 넘기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복잡한 결혼을 한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비결을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싸움'에 있다.

잘 싸워야 한다.


아니, 엄마라는 사람이 싸움을 우선 덕목으로 삼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내 얘길 좀 들어봐.

신혼이라고 불리는 결혼 초반에 지금보다 훨씬 많이 싸우고 힘들었다. 혼자 원룸에서 자유롭게 살다 결혼을 한 난 눈뜨면 회사 출근, 야근을 반복했었기에 집안일엔 잼병이었어. 반찬은 사 먹었고, 설거지는 쌓아두다가 못 견딜 정도면 하곤 했는데, 깔끔한 남편이 어느 날 지적을 했어.


난 내심 너만 돈 버냐, 나도 돈 번다라는 생각에 불끈, 집안일은 우리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라고 화를 냈어.

그랬더니 상대가 그럼 집안일 리스트를 작성해서 똑같이 반반으로 나누자,라고 하더라. 그렇게 한심하고 유치하게 살고 싶냐 어쩌고 하면서 싸움은 길어졌지.

그런 식으로 진 빠지는 싸움이 반복되면 그마저도 피하고 싶어 일명 '조개 작전'이 시행된다. 기분 나쁜 소리를 하면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리는 거지.

상대와 한 공간에 있길 피하고, 같이 있더라도 '불만 있음'을 무언의 시위로 표현하는 거야.

문제는 상대가 나보다 참을성이 더 많다는 데 있었다. 이러다간 보름이고 한 달이고 서로 무시한 채 살겠는 거야.


못 이기는 척하고 상대가 한마디만 걸어주면 바로 마음을 풀 텐데, 그 한마디를 안 해. 싸운 이유는 잊어버리고 나중엔 그 점이 더 서운해 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라고.


연애할 때 그런 상황이 반복되었다면 '응, 안녕'하고 헤어졌었겠지. 대화 좀 하자고 뒤늦게 물꼬를 틀어보지만 일주일, 보름 동안 쌓인 앙금 때문에 대화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 타듯이 차갑게 각자 미끄러지기만 했어.


그러길 반복하다 '조개 작전' 또한 폐기 처분하고, 그날의 화는 그날 말하고 풀기로 다짐했다.

아까 예를 든 것처럼 뭐 대단한 일로 갈등을 겪는다면 남들에게 내 말 좀 들어보시오~라고 소리라도 치겠지만 부부 사이는 원래가 치졸하고 옹졸한 부딪힘이 대부분이다.

그 작은 틈을 방치하면 점점 벌어지다가 쩍 하고 갈라져 버린다.


입으로 꺼내기도 민망한 감정들이라 말을 말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순간, 지난 기억이 불쑥 떠올라 두 배로 화가 나버린다. 저번에, 저저번에 그랬을 때도 내가 참고 넘어가 줬는데, 또 이래? 하고.

문제는 상대가 그 마음을 모른다는 데 있다. 내가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원래가 여자랑 달리 무심한 남자들인데, 여자들이 갑자기 도끼눈을 뜨면 공포스럽지 않겠어?

자신이 너무 치사스럽거나 한심하게 보일까 봐 걱정하지 말고 내가 화나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믿고 말을 걸어라.

자주 싸우다 보면 싸우는 기술도 늘 테다. 예전처럼 화가 나 손이 떨리거나 눈물이 솟기보다 쿨하게 우리 대화 좀 할까?하면서 유머감각까지 발휘할 줄 안다면 중급 레벨 이상이 된 것이다. 축하한다.


서로의 바닥을 보이고, 보여주고, 싸우고 화해했다가 또 같은 이유로 싸우고를 지겹게 반복해라.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한숨만 쉬고 넘어가는 경지에 어찌 바로 다다를 수 있겠니.


고스톱이라고 치면 상대의 포커페이스, 사기, 말장난 등을 겪으며 멱살도 잡고, '파투'도 몇 번 내다가 아, 얘 원래 이런 인간이지? 받아들이고 계속 같이 치는 것과 같다.

여러 번 싸움을 해서 서로의 바닥을 보고 나면 상대를 인정하게 되더라. 아무리 싸워봐도 인정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게임을 계속 하긴 힘들겠지.

계속 같이 게임을 할만하다 싶으면 받아들이자. 상대를 바꾸려고만 들지 말고


어차피 우린 화성, 금성에서 온 외계인끼리 만나 한 공간에서 사는 것 아니니. 같이 살기 위한 노하우로 난 '싸움'을 발견한 것이고, 더 똑똑한 네가 신 기술을 알게 되면 내게도 알려주길 바란다. 긴 세월 같이 살려면 기술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애교'라는 기술이 탑재되어 있었다면 삶이 퍽 수월했을 터인데, 눈에 씻고 찾아볼래도 없다. 넌 싸움보다 애교를 키워보는 게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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