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는 반백 살인 나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계절이 바뀔 때 이 옷을 살지 말지, 휴가 때 여행을 갈지 말지, 용돈을 줄지 말지, 축의금을 내야 할지 말지, 선물은 어떤 금액대로 하는 것이 좋을지 등등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되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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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어렵게 고생했던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일종의 보복심리처럼 자신에게 돈으로 보상하려는 경향이 있더라. 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명품백을 사고, 휴가 철마다 해외 휴양지로 다니고 말이야. 잘 벌면서 쓰는 게 무슨 문제겠어. 항상 얘기하듯이 문제는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이겠지.
나이를 먹어보니 주변에 자주 보이고 들리는 사람들의 부류가 있어. 3, 40대에 잘 나가던 사람들도 50이 가까워지면 예전만 못한 경우도 많고, 반대로 어렵게 살던 사람이 착실히 돈을 불려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역, 큰 평수의 집에 자유롭게 전세로 살면서 사립초등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던 사람이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되기 시작하는데도 예전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느라 빚쟁이가 되는 경우를 봤어. 돈 버는데 자신 있을 때는 굳이 집을 구매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수입이 예전 같지 않았음을 느꼈을 땐 집을 구매할 여력도 없는 거지.
사람 마음이란 게 차를 구매할 때 점점 큰 차를 타고 싶지 작은 차를 타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별로인 지역의 별로인 집을 사고 싶진 않을 거고 말이야.
넷플릭스 영화 <나의 집으로>를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완벽한 집에 살던 가장이 실직 후 집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조마조마한 짓들이 펼쳐진다. 나중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남의 자리를 빼앗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공의 성 같은 삶을 살겠지.
캐시미어를 입다가 나일론 옷을 입으면 얼마나 삶이 거칠거칠하고 구질하게 느껴질까. 한번 커진 삶의 스케일을 줄이는 게 생각보다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사는 이유, 돈 버는 이유, 행복과도 연관된 거잖아.
나도 한때는 부끄럽지만 충분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돈이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까지 쓴 적이 있어. 요가학원을 다니고, 백화점 화장품을 쓰고, 정기적으로 손톱 케어를 받지 않으면 직장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빠져버릴 것 같았거든. 소위 말하는 ‘금융 테라피’ 말이야, 나름 효과가 있었어.
원하는 패턴의 삶을 살고 있어 그런지 지금은 그런 데 돈을 쓰지 않아도 전혀 우울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또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하하.
반대로 자기 몸에 들이는 돈은 거의 안 쓰다시피 하면서 알뜰살뜰 모으던 어른들이 나이 먹고 윤택하게 사는 경우도 많이 봤어. 문제는 안 쓰는 게 기본 원칙이다 보니 돈을 쓸 줄 모르는 분들도 꽤 많더라.
자식들이 의사고 건물주면 뭐해, 친구들 만나면 밥 한번 안 사서 빈축을 사는 어른도 있고, 안 쓰고 고생해서 모은 목돈을 사기꾼이나 주식투자로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분도 봤어.
사랑하는 식구, 친구들과 맛있는 밥 한 끼 먹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돈에 먹혀버린 건 아닐까. 그런 것의 가치를 알았다면 쓸데없는 투자나 감언이설에 넘어가 목돈을 날릴 일도 없었겠지.
탄탄한 직장을 다니든 일정한 수입이 꾸준하게 들어오는 젊은 시기에 되도록 빚내는 경험도 해보고, 안정자산에 투자해보는 경험, 쇼핑으로 마이너스 통장도 써보고 했으면 좋겠다. 해봐야 별처럼 빛나서 갖고 싶던 무엇이 얼마나 무용한지도 알고, 다시 일어서는 유연성도 있을 테니.
나는 어떤 경우냐고?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애매한 삶, 멋있게 포장하면 ‘중용’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반백 살이다. 너는 엄마보단 현명한 돈의 주인이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