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대해서라면 내가 또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대체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조거 팬츠 하나를 입어도 길이나 폭, 허리끈의 너비, 색깔, 옷감의 부드러운 정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기 싫은 거야. 그렇다고 패션에 대한 남다른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옷의 생김새가 마음에 안 들면 싫은 거지.
사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다들 자신만의 옷 스타일이 있지 않니? 티셔츠 하나만 봐도 그거 엄마 스타일이네, 내 스타일 아니네, 구분하잖아. 많이 본 것, 사 입어본 경험들이 쌓여서 취향을 만든다.
남자도 마찬가지야. 남들은 뭐 그리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외모지만 내 눈엔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어. 요즘 유행하는 꽃미남이 아니라 내 눈에 정직한 인상을 가진 얼굴, 마른 남자보다 배가 나온 통통한 몸매라도 피부가 깨끗한 사람을 선호해.
음식도 너무 화려한 것보다 소박해도 담백한 맛이 나는 , 냉면으로 치면 평양냉면, 빵이라면 치아바타 같은 먹을거리를 선호한다. 그러고 보니 일관된 취향이 있는 것 같네?
취향이란 건 많이 써보고, 만나보고, 먹어봐야 생기는 것이므로 가성비만 따지지 말고 마음에 드는 건 사보는 경험이 필요해. 낭비하는 헛짓인 것 같아도 다음엔 실패할 확률을 확 줄여줘. 물론 소득에 비해 과한 지출은 삼가야겠지.
그런데 왜 취향이 필요하냐고?
우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있어.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누구랑 만날지, 뭘 입을지, 뭘 읽고 어디서 살아야 할지 등등 끝도 없이 선택해야 해. 취향이 있으면 쓸데없는 곳에 시간낭비, 돈 낭비하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
옷을 많이 사다 보니 한눈에 딱 견적이 나온다. 디자인부터 가성비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맞을지 아닐지 짧은 시간에 알 수 있다면 체력 소모도 줄고, 안 맞는 옷을 사 스트레스받는 일도 줄겠지. 쇼핑처럼 남자도 자꾸 만나봐야 나에게 맞는 상대를 알아볼 수 있고 말이야.
스티브 잡스가 군더더기 없는 애플 디자인을 만들어내기까지 철학이나 취향이 한몫하지 않았겠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취향은 네게 즐거움을 주고, 남에게는 독특한 향이 있는 사람으로 각인시켜준다. 그것은 비싼 것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안목으로 만들어지겠지.
그러니 볼펜 하나 살 때도 네 취향에 맞는 걸 찾는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