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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수록 행복하지가 않아

by 선홍

신기한 일이 있다. 회사 다니느라 바쁠 때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나 언제나 바쁘고 머릿속이 복잡한 거 아니?

물론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는 출근 시간에 쫓기는 일도 없고, 해도 해도 줄지 않는 회사일에 치이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에 쫓기는 기분 속에 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운 거라.


회사를 그만두었을 뿐, 먹고 살 고민과 꿈을 일체 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일은 죽어야 끝이 날 것 같다. 거기다 살아있는 한 엄마로서의 의무는 끝이 없으므로 매일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고, 청소하는 일은 계속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급하진 않지만 해야 할 일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어째 난 거꾸로다. 오늘 하루쯤은 할 일을 대충 해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지만 완료하지 않으면 찝찝하고 초조해진다.


이것은 남보다 나에게 더 엄격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가치로운 사회에서 누가 이런 나에게 욕을 하겠느냐마는 지나치면 다 독이 된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자신을 닦달하는 것은 기본이요, 누가 나에게 칭찬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가진 많은 단점들이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점차 나 자신을 잃게 된다. 에이, 뭐 열심히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릴하냐고? 화가 나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닥치고 당장 하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다그치는 마음속 선생이 일어나 회초리를 든다.


그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내 감정은 무시하는 게 일상, 기계처럼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 평소에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으니 그 무시된 소리들이 쌓여 불행해지는 것이다. 부지런하게 살수록 불행해지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해낼수록 더 많은 일이 주어질 뿐이고.



머릿속에 하나를 끝내면서 동시에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떠오르기에 쫓기는 사람처럼 현재를 즐기지도 못한다.

나보다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 동시에 나보다 못해내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이런 잣대를 갖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


이렇듯 남보다 나에게 더 엄격한 사람은 언뜻 보기엔 좋은 사람 같지만 잘못하면 '자기혐오'로 가득해진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친구들이 내게 고민을 얘기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편이다. 실제로 그렇게 믿고. 하지만 나 자신에게 그런 적은 드물었다.


내 친구였다면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돼, 그런다고 큰일 안 생겨, 넌 어차피 해낼 거잖아' 하고 격려했을 것이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내면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줬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내가 하기 싫을 때는 하기 싫은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 마음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안 해서 문제가 생기면 '싫은데 어쩌라고?'중얼거릴 걸 그랬다.

열에 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뭐가 있냔 말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즐겁다면 다 해내길 응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각해보란 말이지.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면 성수동에 가서 맛있는 커피랑 디저트를 먹고, 서촌에 가서 예쁜 옷 구경이나 하든지, 친구랑 만나서 종일 농담 따먹기나 하든지.


요점은 네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지 말란 얘기다. 바쁘고 열심히 살수록 불행하다면 꼭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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