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게 느껴질 때는? 나쁜 습관, 나쁜 남자를 칼같이 끊어내고 싶을 땐?
살이 죽어도 안 빠질 때는, 화가 나서 하늘에 대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싶을 때 등등... 속상하고 고민은 차고 넘치는데 시간 없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
그건 바로... 일기 쓰기다.
헐, 뭥미, 어쩔?... 하고 소리치는 게 들리는 듯하다. 일기를 쓰는 건 내 마음을 빨래처럼 빨랫줄에 널어 거는 일이야.
점점 무슨 소린 지 모르겠다고?
생각해봐, 갑자기 우울, 분노, 슬픔이 날 습격한다. 그 순간에 내 마음을 들어줄 지인이 옆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돼? 약속을 잡다 보면 그 순간의 감정은 휘발되거나 희석되어 버리고, 만났을 땐 이미 먼지가 가라앉은 후야. 그 감정이 잘 휘발되어 사라졌다면 다행이겠지만 찌꺼기가 남아 다음번에 또다시 떠오른다.
그때 손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에 드는 노트와 펜 한 자루를 들고 앉아 휘갈기는 것이다. 이왕이면 집이나 직장이 아닌, 마음에 드는 분위기의 카페 같은 공간이면 더욱 좋겠지. 쓰면서 느꼈던 건데, 나 혼자 보는 글인데도 누군가를 의식하는 습관이 있는지 완전히 솔직해지지 못하더라. 진심은 자주 쓰고, 꽤 써 내려가야 나오던데.
그 순간의 가면을 벗은 난 참 치사하고, 한심하더라. 내 안의 옹졸함, 치사함, 이기심 등의 부정적인 면모를 종이 위에 꺼내 놓고 보면 빨랫줄에 널린 빨래를 쳐다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해.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거든.
평소에 마주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쓰나미처럼 덮쳐오면 어디까지 휩쓸려갈지 두려운 마음이 들잖아. 종이 위에 그런 감정을 다 쏟아내고 보면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에 뭐 별 거 아니네, 하는 여유가 생긴달까.
놀랍게도 초등학생 때부터 반백살이 될 때까지 일기를 써왔어. 이사 갈 때 집에 쌓인 일기장과 책 처리가 제일 고민이라니까. 오늘 날씨가 어쩌네, 누구랑 뭘 했네, 하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의외로 다시 읽어보지 않는 게 일기더라. 써야 하는 부담은 초등학생 때 의무적으로 했던 숙제 이후로 끝내고, 이왕이면 날 위해 일기가 봉사하도록 만들자.
세상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내 민낯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활용하기.
반면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형광펜 등으로 꼼꼼하게 기록하는 건 되도록이면 피하자. 꼼꼼할수록 하기 싫어지고, 실패할 건수도 많아지기 때문에 자신감만 떨어져. 하나가 밀리면 다 하기 싫어지는 심보도 생기고. 잘 알지?
일기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감정을 쏟아내더라도 그 이유는 현재를 잘 살기 위함이야.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여유만 생기면 온통 과거와 미래 걱정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살지 않아 놓쳐버리는 소중한 것을 틀어잡으려는 노력이기도 해.
일기에 간단한 글은 물론, 그날 갔던 장소나 음식을 그려 넣기도 하고, 색칠을 하기도 해. 미술치료처럼 되는대로 그리고 색칠하는 일 자체가 힐링이야. 일기 쓰는 순간만큼은 부담 없고, 세상 자유로워야 해.
쓰다 보면 네임펜, 사인펜, 연필, 만년필 등 여러도구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노트도 '몰스킨'이나 '미도리'처럼 자꾸 좋은 걸 쓰고 싶어 지는 게 문제야. 손에 잘 붙는 펜과 궁합이 잘 맞는 노트만 만나면 만사 오케이거든. 휴대성이 좋으면서 튼튼해서 쓸 맛 나는 노트를 구비한 다음 어딜 가더라도 데리고 다녀봐.
어떤 곳에 혼자 있더라도 신기하게 외롭지가 않아. 나랑 같이 다니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 봐.
< 현재 다이어리 >
금연이나 다이어트처럼 목표하는 게 있다면 일기장 구석에 점수표를 만드는 것도 좋아. 하루에 피우기로 한 담배 개수, 먹기로 한 칼로리를 정한 다음 O, X를 하던지 스티커를 붙이던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으로 점수를 매겨. 자꾸 하다 보면 스스로를 억제하는 힘이 차츰 생기더라.
일기 말고 또 다른 팁이 하나 있다면 바로 '걷기'야.
걷기의 마력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이야기하므로 일단 다음 기회로 미루자. '일기'와 '걷기'의 습관만 있다면 수영을 못하더라도 세상이라는 바닷속에서 구명조끼 하나 정돈 걸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