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새>를 조성모가 리메이크한 곡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니?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들 의외로 잘 모르고,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MBTI가 유행하는 게 아닐까. 설마 상대를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어떤 형이냐고 묻는 건 아니겠지?
어떤 분석이든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한 가지 성향이 도드라지는 사람과 몇 가지 유형이 섞인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 더군다가 남이 아니라 내가 측정한 '나'를 너무 맹신하지 않길 바래.
한번 배워두면 자신은 물론 타인도 어떤 유형인지 알 수 있는 도구가 있어 소개하려고 해.
바로 '애니어그램'이란 것인데, 캐릭터 창조가 필요한 작가들은 아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야. 나도 그런 필요 때문에 강의를 들으러 다녔었으니까.
애니어그램은 4,500년 전 중동에서 발견된 걸로 추정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알려지면서 예수회 신부들이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했었다고 해. 현재도 종교는 물론 정신적 질병 치유나 심리학 등에 쓰이고 있고.
애니어그램은 크게 장형, 가슴형, 머리형 세 개로 나뉘고, 각 카테고리마다 3개씩의 유형이 있어 총 9개로 분류돼. 알고 나면 별 건 아닌데 진입하는데 장벽이 있으니 '애니어그램의 지혜'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길 추천해.
작가도 아닌데 그런 게 무슨 쓸모인가 물어보겠지.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볼게. 난 '머리형의 7번'이다.
7번은 세상에 호기심이 많고, 낙천적인 편이야. 싫증을 잘 느껴서 한 분야를 깊이 파는 것보다 얇고 넓게 아는 걸 더 선호해.
그걸 알고 나니 마음의 짐 같은 게 내려가는 걸 느꼈는데, 왜인고 하니 평소 호기심이 많아서 알고 싶은 게 생기면 열정적으로 파고들거든. 문제는 관심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했어. 난 왜 이 모양일까, 필기구에 꽂힌 사람은 필기구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쓰는데, 난 금방 지우개, 노트, 필통까지 궁금해져 버리는 거야.
타고난 내 성향이 그렇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자기 비하와 자책에서 벗어나게 되더라. 아,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구나, 그럼 난 깊진 않지만 다양한 걸 추구하면 되겠다. 직업은 학자보다 PD가 잘 맞겠다 등등,
쓸데없는 자기비판을 하지 않게 되니 자존감도 올라가고, 약점은 고치는 게 좋겠으나 자기 한계도 인정하게 돼. 무조건 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날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데.
남을 판단할 때도 저 인간은 왜 저러지? 대체 왜 안 바뀌는 거야? 하고 답답해하던 것이 많이 사라졌어.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어쩌겠어, 나도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게지.
물론 애니어그램도 1번은 1번 만의 성향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번호들이 섞여 5번 성형이 있는 7번, 또는 서 너 개가 섞인 7번도 있겠지. 도드라지는 성격을 아는 것일 뿐, 다양한 7번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돼.
가르쳐주는 선생님에게 애니어그램을 안 다음엔 뭘 하는 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 선생님은 남이 봤을 때 '몇 번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라고 하더라. 도드라져 모난 부분을 갈고닦아 둥글게 되는 것, 그러려면 내가 어떤 모양의 모난 돌인지부터 알아야겠지. 내 한계를 안아주고, 나아질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것도 결국 남에게 맡길게 아니라 내가 해줘야 하는 일 아닐까?
어떤 도구든 자신이 편한 걸로 선택해서 나를 탐험하는 시간을 가져봐. 뜻밖의 발견과 화해의 시간을 갖게 될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