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벨’ 따윈 개나 주는 분위기의 영화사의 퇴근과 주말은 불규칙한 미학의 정점을 달렸다.
그랬기에 애를 둘이나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일은 회사 대표님의 이해와 시어머니의 황혼육아 없이는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었는데.
아이들은 낡고 오래된 한옥들이 늘어선 시댁의 동네 골목에서 ‘촌스럽게’ 자랐다. 촌스럽다는 표현이 아마 정확할 것이다. 열 때마다 ‘찌그덩’ 소리가 나는 나무 대문을 열면 명절날 전을 부치는 손바닥 만 한 크기의 마당과 빨간 고무 통들, 하얀 창호지를 붙인 문들이 보였다. 창호지에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구멍 내고 낙서한 부분이 많아지면 시어머니는 종이를 떼어낸 후 풀을 발라 새 창호지를 붙이시곤 했는데.
만화 ‘검정 고무신’에 나올만한 부모님 시절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놀랍게도 내 아이들이 자란 환경이 그러했다! 국민학교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시골 외할머니 댁에나 가야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였단 말이다.
‘세련되고, 쿨하고, 멋진 것’을 찾아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나는 여기가 ‘세련되고 멋진’ 서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멋진 것을 만드는 것 같아 영화사에 취직했던 나이기에 애들은 낡은 한옥에서 촌스럽고 불편하게 자라면서 엄마 아빠는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내심 불편하고 싫었다. 허나 안정적이지 않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일에는 할머니 집, 주말에는 부모와 사는 생활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하며 자랐다. 주변에선 주말에만 아이들과 같이 살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걱정과 우려들을 많이 해주었다. 이때가 바로 부모의 ‘불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잖아도 아이가 학교에서 기죽을 일을 당하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다 ‘내 탓’이라고 생각되는 엄마의 불안한 회로를 예민하게 긁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은 골목의 수많은 모퉁이처럼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툭 튀어나오곤 했다. 선배들의 조언은 초짜 엄마의 마음과 주관을 마구 흔들어버리곤 했다.
생각해보면 남들이 키워줄 것도 아닌데, 흔들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마음이 건강한지 체크하면서 내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하고, 남보다 경제적 지원을 못해주더라도 미안해할 시간에 눈이라도 한 번 더 맞추는 게 좋다는 걸 알았다. 대신 아이들과 집에 오기로 정한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냈다. 항상 남의 집이 부러워 보였지만 어차피 완벽한 환경이란 게 있을 리 없질 않나.
아이들이 잘 크는 모습을 보면서 차츰 엄마, 아빠와 같이 살지 않아도, ‘촌스러운’ 동네에서 자라도 괜찮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 사람 초대하기 싫어하는 나 같은 엄마와 아파트에서 살았다면 건조한 시멘트 같은 일상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노인 분들이 많고, 대문 열고 사는 한옥 골목에서 층간소음 따윈 모르고 뛰어다녔다. 아무래도 아이들 때문에 자주 시댁을 찾았는데, 갈 때마다 동네 할머니들이 별 이유도 없이 찾아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고 계셨다. 갑자기 아파도 달려올 이웃들이 있는 ‘응답하라 1988’ 같은 동네. 어릴 때 추억도 살아나면서 낡고 촌스럽게만 느껴지던 곳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맞은 편집에 사는 할머니는 중국집을 하다 은퇴하셨는데, 자기 손주 또래인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주 자장면을 만들어 주셨다. 허리가 엄청 휜 옆집 할머니는 연세가 가장 많았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 진짜다, 6,25도 아니고 무려 일제 강점기다! - 얘기를 반복하셔서 애들이 피해 다녔지만 나만 보면 반갑게 맞아주셔서 좋았다.
노령화 사회의 압축판인 그 골목에서 나이가 70세 정도면 젊은 축이라 손주를 키우든 빌딩 청소를 하든 할머니들은 자기 힘으로 열심히들 사셨다. 이제는 재개발이 되어 다들 뿔뿔이 헤어져버렸지만 아기 때부터 서로의 손주, 손녀를 봐온 할머니들은 우리 집 애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들 하셨다고 한다.
요즘 한옥을 리모델링해 베이커리 카페나 이태리 음식점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동서양의 만남이 낯설고 새롭기도 하겠지만 우리 것이 주는 아름다움과 편안함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인스타그램용 예쁜 브런치 음식은 매 끼니 먹기엔 느끼하지만 돼지 목살을 듬뿍 넣은 김치찌개는 질리지 않는다.
파김치처럼 지친 금요일 저녁마다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시댁 골목에 들어서면 구수한 밥과 매콤한 찌개 냄새가 흘러나와 바짝 마른 영혼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내가 ‘세련되고 멋지다’고 느끼는 것들이 과연 아이들에게도 좋은 걸까? 남들처럼 세련되고 멋지게 입히고 먹이지 못하더라도 불안해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