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납치를 아시나요

- 고등학교 시기

by 선홍

납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바로 ‘수시납치’를 말함인데, 정시보다 먼저 열리는 수시에서 지원한 6개 대학 중 한 개라도 합격하면 정시인 수능시험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이 나와도 무조건 수시에 합격한 대학으로 가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억울하게 납치당하지 않으려면 합격했을 때 갈 생각이 있는 대학에만 수시 원서를 넣는 게 좋겠다. 아니면 수시라도 면접이나 논술 고사까지 추가로 치러야 하는 대학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겠다. 정시 이후에 수시 면접까지 있는 대학을 고르면 혹시 정시가 잘 나왔을 경우 면접에 안 가면 불합격 처리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대학이 지원하고 싶은 대학일지가 미지수인 것이 문제.

그렇기에 수시 지원 때 쓸 수 있는 대학원서가 6장 있어도 상향지원은 해 볼 수 있겠으나 하향지원을 해보는 안전망으로는 쓸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는 나는 수시, 정시 둘 다 치른 다음에 제일 잘 나온 성적으로 지원하면 되지, 원서 쓸 때조차 스릴러 영화 찍는 아슬아슬함을 느껴야 하나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시와 정시로 분리해 지원하도록 만든 의미 자체도 사라져 버리고, 정시 지원하는 학생들이 수시를 안전망으로 잡고 이용하는 경우도 많이 생길 것 같았다. 합격해도 취소하고 더 좋은 대학으로 가버리는 ‘합격 취소’ 경우가 지금보다 더욱 많아져 혼란이 가중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교육전문가의 책을 읽는 중에 아는 지인이 홍대 수시에 합격하는 바람에 정시에서 SKY 갈 성적이 나왔지만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억울한 마음에 재수를 했지만 결국 홍대에 다시 합격하고 말았다는 얘기. 재수를 하는데 드는 돈과 노력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기에 남의 일처럼만 들리질 않았다. 물론 수시보다 정시 시험을 월등하게 잘 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 같지는 않았는데.


결론은 원서 쓰는 일에도 전략이 필요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물론 ‘수시납치’라는 말조차 아이한테서 처음 들은 내게 전략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한 번에 5만 원, 10만 원 하는 대학 원서비도 그렇지만 납치당하지 않기 위해 원서 6장을 억지로 채울 수도 없었다. 결국 아이는 5장의 원서를 썼고, 남은 한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 건 아닌지 속으론 노심초사, 전전긍긍했지만 아낀 원서비로 밥이나 사 먹자며 희희낙락했다. 참으로 나 자신 맑은 뇌의 소유자라 아니할 수 없겠다.

수시에 떨어지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대학 서열화 순서 - 앞서 얘기했던 ‘서연고 서성한....’의 주문 - 대로 원서를 넣은 것이 문제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서를 다 넣은 후 뒤늦게 학원 기관의 유튜브를 보다가 듣게 된 것인데, ‘서연고’ 묶음 중에 한두 개를 쓰고 그다음 묶음에서 한두 개를 골라 써야 합격률이 높아지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렇게 한 묶음 안에 있는 대학을 쓰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또 나만 모르는 거였나?


그럼 가고 싶은 대학이 한 묶음 안에만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묶음 별로 나눠 쓰려면 가고 싶지 않은 대학도 써야 하고, 합격률이 높아질 순 있겠으나 수시 납치를 당하면 또 어떻게 하나?

원서 쓰는 게 말이 6번의 기회지, 머리만 복잡해지고 쓸 수 있는 대학은 한정적이었다. 정시 때 3장의 원서 쓰는 일은 더욱 머리가 아프니 다음 기회로 미루자.


원서 쓸 때마다 입시 코디 정도가 아니라 갑자기 샤머니즘 신봉자가 되어 점쟁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강남의 청담보살이 입시철에 왜 바쁜지를 알게 됐는데.

불행히도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장군신 중 누구의 ‘빽’도 없는 난 남편,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고민도 듣고, 가족 간의 대화도 할 수 있었으니 ‘빽’이 없는 덕에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내게 없는 것을 찾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수도 아무나 못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