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도 아무나 못하나요?

- 재수 시기

by 선홍

열심히 준비해왔던 ‘수시’에서 떨어진 첫째는 준비하지 않은 ‘정시’에서 한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래 목표로 했던 대학이 아니었던 터라 바로 재수할 결심을 하더니 열심히 괜찮은 재수 종합학원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나도 재수를 했으니 대를 잇기 위해 애쓰는 딸이 기특할 뿐이었다.


역시나 요즘의 유명 재수 종합 학원들은 다 강남에 있었고, 나에겐 그 이름도 생소한 ‘강남 XX과 ’ 시대 XX‘가 유명하다고 했다. ’ 러셀‘도 있고, 소수 정예식의 재수 학원들도 꽤 많았는데, 유명한 이유는 명문대 합격률이 높은 것이 그 경쟁력이겠다. 1년 만에 공부해서 합격률을 높이려면 당연히 애초 성적이 되는 학생들을 뽑는 것이 시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남 XX'을 선택하겠다고 한 딸은 들어가는데도 조건이 있다고 했다. 무시험전형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우선선발, 선착순, 성적순, 이 3가지 중에 해당하면 된다고 했고, 우선선발의 경우 수능 성적표를 보는데 국/수/영 혹은 국/수/탐의 조합으로 3합(세 과목 합) 5등급 이내의 성적이면 들어갈 수 있단다. 선착순, 성적순 전형으로 들어가려면 또 다른 성적 조건에 맞아야 했는데.


아니면 유시험 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대학 입시를 끝내자마자 재수학원 다니려고 또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학원에 다니고 싶은 학생이라면 또 마음 졸이며 시험 결과를 기다리겠지.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가 어려워서 시험을 치고 또 치고... 젠장, 시험만 치다 인생 끝날 판이다.


애니웨이, 첫째는 다행히도 무시험으로 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재수 종합반의 한 달 학원비가 국립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강의료 외에 교재비, 급식비, 독서실 사용료가 추가되면 그러했던 것. 학원의 기숙시설이 잘 되어 있어 지방에서도 많이들 올라왔는데, 그만큼 비용은 더 추가될 수밖에 없었다. 강남역 주변에 포진된 학원 건물들을 보고 놀라 입을 쩍 벌리며 서울에 살아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첫째가 합격한 대학이 휴학 불가능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오후에 수업하는 학원 야간(?) 반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나마 학원비를 줄일 수 있었는데.


비싼 학원비가 미안했던지 첫째는 먼 강남까지 군말 없이 열심히 등원했다. 고등학교 때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았던 것도 지겨워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거의 학원을 보내지 않아 불안했었는데, 입시전문가들이 포진한 학원에 매일 다니고 있으니 마음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입시 컨설팅도 알아서 해줄 것이고, 수능에 특화된 전문가들이라 그런지 선생님들이 잘 가르친다고 아이도 만족해했다. 교육에도 가성비를 따지는 천박한 나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 만족하긴 했지만 씁쓸한 맛을 지을 순 없었다.


재수도 이렇게 쉽지 않은 상황이니 농어촌보다 서울에 살고, 같은 서울이라도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동네에서 자란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률이 높다는 기사를 읽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교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4년 서울대 합격률은 강남구가 강북구의 21배에 달했다고 한다. ‘개천용’이 가끔은 존재했었던 ‘라떼’라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금수저, 은수저’하면서 계급을 나누는 말이 은근히 듣기 불편했었는데, 현실이 이러하니 참으로 예리한 통찰력이 아닌가.


‘요즘 젊은 세대가 문제야’ 하는 말은 고대 그리스 적부터 역사적으로 존재해왔지만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요즘 친구들의 삶은 그야말로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학 입시를 겪다 보니 비판보다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라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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